먼저 국내로 들어간 곽재기 일행을 만나기 위해 회합장소인 밀양근처 A 여관으로 향했다. 몇 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리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칼을 찬 순사들은 여전히 거리를 배회했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린 아이는 수표교 아래서 진을 치고 구걸을 하러 다녔다.
그러나 경학이는 달랐다. 모든 것을 낯설어 하는 듯했다. 고향이 밀양이라 도시를 처음본 아이처럼 거리를 두리번거렸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곧장 밀양으로 향하는 철도에 몸을 실었다. 밀양으로 향하는 동안 경학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학이도 말을 붙이지 않았다. 암묵의 약속을 한 듯 고요했고, 차디찬 궤도의 쇠가 부대끼는 요란한 철도소리만 귀를 울렸다.
서너 시간의 이동 끝에 밀양에 발을 디뎠다. 크게 한숨 들이키는 경학의 모습을 보고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을 사랑했던 조국을 사랑했던 저 순수한 모습이 어찌 폭탄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투사가 될 수 있으랴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곽재기 일행의 마중에 우리는 서둘러 여관으로 향했다. 밀양경찰서의 주변 정황모습과 상주하고 있는 경찰의 수. 그리고 적절한 시간을 모두 계산하고 있었다. 곽재기는 말을 꺼냈다.
“단장님 3개의 폭탄으로는 그 수가 부족합니다. 혹시 더 가져올 수는 없습니까?”
“혹시 그럴지 몰라 이성우에거 조금 더 준비하라고 일렀네. 폭탄 13개와 미국산 총 2정이 곧 이곳으로 당도할 것이네.”
“여기서 긴 이야기를 하면 우리들의 정체만 더 위험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장님은 이곳에 기거하고 저희들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부디 이곳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알겠네, 곽동지. 경학이가 이곳 정세를 자세히 알고 있으니,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시찰하고 보고하길 바라겠네.”
짧은 회합은 그렇게 끝이 났다. 밤새 노곤했던 몸을 여관에 의지했다. 지난여름 피었던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침대와, 삐걱거리는 바닥을 지나 의자에 걸터앉았다. 침대보다는 이런 쪽잠을 자두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내 습관이나 다름없었다. 곽재기와 함께 먼저 시찰을 떠났던 최지석은 내 옆을 지키고 서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 순간 피로로 젖어들었다.
지석이가 나를 흔들었다.
“단장님 큰일입니다. 일본순사가 닥쳤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순사라니.”
나는 허겁지겁 내 짐을 뒤져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일본순사가 우당탕하며 뛰어오는 소리에 숨죽이고 기둥뒤로 슬며시 숨어있었다. 다행이 순사는 많이 오지 않았다. 4명으로 구성된 인원들은 우리를 향해 아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여관맞은편에서 지석이 또한 숨죽이고 나의 눈과 손짓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순사가 다다른 것이 보였다. 내 발옆에 있던 양동이를 걷어차 창가쪽으로 시선을 유인하는 순간 지석이가 탕!하고 총을 발사 했다. ‘아아악’이라는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심장은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당황한 일본군 순사를 상대로 나는 계속해서 총을 쏘아댔다. 흉부와 허벅지 머리를 향해 쏘던 총이 틱틱 소리를 냈고 응전하던 일본순사의 총소리도 멎었다. 일본순사3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한 명은 실낱같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자에게 다가갔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아..아니 자네는 조선사람이 아닌가?”
그자의 입에서 튀오나온 말은 뜻밖에도 우리의 언어였다. 일본 순사와 함께 달려온, 그리고 우리를 향해 총을 쏘아대던, 그자는 우리와 같은 동포였다. 나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지석이가 다가와 탕!하고 한발을 발사한 후 가래침을 내뱉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고, 당황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겨를 없었다. 지석이는 오히려 왜 빨리 처리하고 떠나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문 앞으로 세구의 아니 네구의 시체가 쌓였다. 머리는 제멋대로 터져 뇌수가 흘러내렸고, 복부를 뚫고 지나간 총탄의 흔적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흘러내리는 창자와 바닥에 낭자한 피는 곧바로 다음번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이런 생각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석이와 나는 최대한 흔적을 처리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항구든 경성이든 몸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천지역에 있는 중국인 마을인 배다리로 몸을 숨겼다. 쉽사리 항구로 갈 수 없었지만, 몸을 숨긴다고 지방으로 더욱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방을 돌고 돌면서 선을 대어 연락을 들었다. 지석이를 통해 곽재기를 비롯한 의열단원들이 체포된 사실을 알려왔다. 김세직이라는 자를 통해서 폭탄을 밀반입한 것이 들통난 것이다. 밀양의 오기심이라는 자의 집에 몰래 보관해 두던 폭탄을 누군가의 밀고로 일본 순사가 들이닥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13개의 폭탄으로 거사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 3개의 폭탄이 발각되어 의열단원이 검거된 상황에서 새로운 13개의 폭탄을 가져오기로 했던 김상윤은 수소문을 듣고 배다리로 찾아왔다.
“단장님 3개의 폭탄으로 검거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경성으로부터 이 폭탄을 빼내어 오느라 일주일밤을 꼬박 세었습니다.”
“수고 많았네. 김동지. 지금 상황이 좋지를 않아. 일본군을 살해 한 혐의로 도피중이고, 곽동지를 비롯해서 5명의 동지들이 모두 체포되었어.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단장님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단장님의 한마디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상윤동지 고맙네.” 나는 상윤이의 손을 꽉 눌러 잡았다. 눈에는 일주일의 피로가 담겨있었으나 그가 발하는 눈빛은 변함없었다.
“단장님 제가 선을 대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상윤은 그렇게 말한 후 위험한 여정을 다시 떠났다.
골방에 틀어박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 보다는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혹시나 연락이 오지 않을까. 혹시나 순사가 들이 닥치지는 않을까. 하루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마나 문밖으로 고개를 빼고 주위를 관찰하는것이 습관이 되어버릴 정도 였다. 그렇다고 밖으로 몸을 함부로 놀릴 수는 없었다.
일주일의 시각이 흘렀을 때 즈음 상윤이를 통한 연락이 닿았다.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단장님 최대한 빨리 상해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갔습니다. 지금 밀양의 상황은 최악입니다. 곽재기를 비롯한 동지들이 체포됨은 물론 부산에서도 동지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번사건을 맡은 이는 김태석이라는 자로 지난번 강우규 선생님을 체포했던 그 악질 경찰입니다.
이번 거사는 아무래도 틈이 보이질 않습니다. 밀양경찰서는 물론이고 각종 건물에는 경찰들로 깔려있고, 거리를 걸을때마다 증명서를 내보이라는 통에 쉽사리 나갈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고문이 시작되면 그 고통으로 동지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밀양을 떠나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 내 동지들이 체포한 것이 김태석이었구나. 탄식이 나왔고 고문을 당하고 있을 재기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일본놈들이 하는 고문은 익히알고 있던 고문과는 사뭇 달랐다. 그 잔인성에 두눈을 뜨고 보기어려웠고, 그걸 참아내는 자는 반죽음이 되어있거나 이미 몸에 한구석은 불구가 된 뒤였다. 죽는 것이 아니라면 실토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목숨바쳐 의열단이 된다한들 그 극한 고통을 모두 소화하긴 힘들 수 밖에 없다. 손톱밑으로 파고들어가는 대나무를 감내하고 있을 재기. 몸에 물을 채우고 배를 몽둥이로 내려치는 고통을 감당하고 있을 경학이를 생각하니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투옥됐더라면, 차라리 내가 체포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게 하였다. 일본순사를 죽이면서 살아남은 이 몸뚱이가 역겹게 느껴지며 헛구역질이 났다.
192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는 ‘직경 3촌(寸)의 대폭탄’이란 제목으로 “총독부를 파괴하려던 폭탄은 비상히 크고 최신식의 완전한 것”이라고 보도해 이것이 폭파되었을 경우를 상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