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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4. 2021

[소설]강점기(5)

두 번째 발걸음.     


북경으로 발을 돌렸다. 일년이 지났을 때 소식이 들려왔다. 곽재기와 이성우가 징역 8년, 윤세주, 황상규, 김기득 ,이낙준, 신철휴가 징역 7년 , 윤치형이 징역 5년 이었다. 

  

의열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많은 인재들이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이로서 나의 의지도 한풀 꺽이는 듯 싶었다. 집무실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고심하고 있었다. 평소 나에게서 많이 볼 수 없었던 이유인지 종암이가 말을 건냈다.     


“단장님 다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내 생각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갇힌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번으로 끝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던 것은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지 지나간 시간을 회고하고자 함은 아니네, 세주가 외친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이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최후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 이라 말했던 이 뜨거운 마음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네.”


종암이는 물러갔다. 숙소와 회합장소를 변경해야 했다. 독립군을 가장하고 우리주변으로 다가오는 무수한 위험속에서 동포들을 구하는 길은 최대한 조심하고 최대한 방제하는 길뿐이었다.     


밖에서 때 아닌 소란이 들리고 있었다.     


“안된다니까 그래 글쎄. 우리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 온 거야?”     

“왜 안 된다 하십니까? 나도 조선사람인데, 나도 독립운동 하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나도 내 부모 죽게 한 일본놈들한테 복수하겠다는데, 나도 내나라 찾겠다는데 왜 안 된다고 하시는 거냐구요. 내가 여자라서? 내가 여자라서 그런 것이냐구요.”     


앙칼진 목소리라기보다 목소리는 많이 쉬어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음성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종암이를 제치고 막무가내로 집무실로 들어왔다.     


“단장님 이아이가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바람에...”

종암이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냉정하던 사내가 여자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나 하는 생각에, 아 내 단원들도 남자이고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다 괜찮다. 얘기나 들어보자꾸나. 종암이는 나가서 하던 일을 계속 하거라.”     


종암이가 집무실을 나서자, 고성을 지르던 아이는 쭈뼛거리며 나를 응시했다. 고작 15세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흰색저고리에 치맛자락이 헤진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검댕이가 묻어있긴 했지만 청초한 소녀의 티가 그대로 배어나왔다. 다만 다부지게 다문입술과 눈빛만은 검은 살쾡이와 같았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단장님 나도 의열단에 끼워주시오” 꾀나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얼굴에서 풍기는 모습과 사뭇 다른 느낌마저 안겨주었다. 나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묻기에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한마디만을 던져주었다.     

“오직 죽기위해서 지금을 살 수 있겠느냐. 여기모인 모든 이들은 죽기위해서 산다.”     


소녀는 무슨 말을 하는지 금세 헤아리지 못한 듯 보였다.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이네 ‘네’라고 대답했다.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지금은 막무가내로 달려들 것이 자명해 보였다. 적당한 말을 둘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했다.     


“지금 너의 그 몸으로 의열단에서 할 수 있는 없으니 돌아가거라. 지금 네가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왔는지는 모르나 우리의 모습 우리의 행동 우리의 거처에 대해서 말한다면 네 목숨도 온전치 못할 것임을 명심해 두어라.” 나는 단호하게 겁을 주며 말했다. 소녀의 눈을 살펴보니 온화하게 대했던 내 모습에 놀란 모습이었다.     

“나으리 무슨일이든 하겠습니다. 일본놈을 때려죽이는 일이든 혹여나 하찮은 허드렛일이라도 마다않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간곡조로 변해있었다. 밖에 있는 해진을 불러 소녀를 돌려보내라 일렀다. 


그렇게 소녀는 한 달 내내 의열단 숙소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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