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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4. 2021

[소설]강점기 (6)

소녀의 이름은 해진이었다. 바다 海자에 참 眞이었다. 고향은 인천이라 하였다. 바다를 업으로 알고 사는 사람의 여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깊은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해진이라’ 나는 몇 번이고 곱씹어 이름을 음미해 보았다. 

海라고 말하는 순간 마치 바다의 광풍이 머리위를 지나는 듯 싶었고, 때로는 거친 바닷바람이 살을 에는 추위를 느끼기도 하였다. 眞이라는 말은 또 어떠하랴. 진이라는 의미의 깊이는 너무나도 크다. 무엇이 진이냐. 무엇이 참인것이냐. 해진이라는 이름은 마치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과 같았다. 김대지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참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냐. 너가 말하는 조국독립이, 너가 행하는 행동들이 저 일제의 폭압적인 폭력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 라고 수차례 질문을 던져보였다. 


의열단을 만들고 한 번의 습격이 실패하면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던 고민들이 다시 한 번 세차게 머리를 뒤집고 다녔다. 해진이라는 소녀의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그녀의 부모는 인천에서 배를 타는 뱃사람이었다. 남동생과 부모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뱃일로 굶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어업령을 제정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기존에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어업권을 무시해 버리고,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양도해 버린 것이다. 해진의 아비도 그렇게 자신의 할 일을 빼앗겨 버렸다. 만약 해진의 아비가 일제에 항거하지 않았다면, 해진도 나를 이렇게 찾아오진 않았을지 모른다. 해진의 아비는 자신과 같이 어업권을 빼앗긴 뱃사람을 모아 정식으로 일본에 항거했다. 물론 그의 행동에 일본의 행동에 변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에게 돌아간 것은 차가운 종이 쪽지였고, 그다음에 찾아갔을 때 돌아온 것은 몽둥이였으며, 그 다음에 찾아갔을 때 그의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업무방해죄와 기물훼손죄가 그 죄목이었다. 너무 하찮은 그 죄목으로 아비는 차가운 옥살이를 6개월이나 해야 했고, 그동안 해진이는 굶주림을 겪게 되었다. 어미는 삯바느질로 간신히 연명하긴 했지만, 하루 두 끼를 먹던 그의 가족이 간신히 피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보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아비의 옥바라지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비가 6개월의 형량을 모두 채우고 나올 즈음 사단이 났다. 독립운동세력의 운반책이라는 것이 죄목이었다. 만들어진 죄목에 만들어진 증거들은 아비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했다. 그 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려다가 실패했다는 내용의 신문을 접하고 나서야 해진은 아비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잡혀갔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비는 항거했던 전력과 운반책이라는 죄목이 더해져 가중처벌 대상이 되었다. 2개월 남짓한 형살이는 10년이라는 긴 세월로 변해버렸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풀석 주저앉았고 동생 해석은 울음을 터트렸다.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면 입술이 터질득 악다문 해진은 그때 다짐했다고 했다. 그 해 해진의 나이 열일곱 이었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코 흘리게 동생이 잡는 치맛자락을 뿌리치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상해로 건너왔다. 오직 의열단을 찾아 내 아비를 꺼내달라고 말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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