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비효율적인 기구
요즘 가정 주부들이 꼭 구매해야 하는 제품 중 하나가 인덕션이 아닌가 싶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사를 할 때가 되니, 와이프가 갑자기 인덕션을 사자고 나를 졸랐다. 나야 직장에서 인덕션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장단점을 뻔히 알고 있었고,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인덕션의 가장 큰 장점은, 레스토랑 주방에서나 볼 법한 고화력을 가정에서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 집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런 고화력이 필요한 요리(중식)를 자주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덕션이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중요하게 여긴 '화력'이나 '내구성(강화유리의 단단함)'에는 와이프가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와이프가 생각하는 인덕션의 장점은 다음과 같았다.
- 여름에 덥지 않다.
- 청소가 쉽다.
- 불꽃이 없어 아이들에게 안전하다.
- 가스 누출 사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집에서 요리자체를 많이 안 해 먹으며, 가스버너 청소는 내가 거의 다 하였고, 아이들은 일 년에 한두 번의 달걀 프라이를 제외하고는 요리 자체를 할 일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가스 밸브는 타이머식으로 가스 누출도 걱정 안 해도 되었었다. 내 판단으로는, 와이프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사실 인덕션에 대한 약간의 '환상'과 '감성' 때문에 구매를 결정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가격 등을 이유로 한동안 반대를 했었다.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구리 팬과 알루미늄 팬이 인덕션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이 이유를 말해봤자 구리 팬을 그냥 '비싼 쓰레기'쯤으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더 이상 이야기를 하면 부부싸움만 날 것 같아 모든 선택을 와이프에게 맡겼다. 그리고 와이프는 '하이브리드 방식은 불편하다네, 그냥 100% 인덕션 방식으로 구입할게'라고 이야기하였고 나도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돌아보면, 이게 내 최대의 실수였다. 하이브리드 인덕션 방식을 고집했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인덕션 디스크'라는 해결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인덕션 위에 이거 올리고 사용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였다. 거기에다 해외 유튜브나 아마존 리뷰를 보면 "쓸만하다"는 평이 많아서, 안이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인덕션을 설치하고 바로 인덕션 디스크를 구매했다. 아마존에서 샀고, 가격은 테팔 중~고급 프라이팬 하나 가격쯤(6~7만 원) 했다. 국내에 유통되는 몇만원 짜리의 저렴한 중국산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하려면 품질 좋은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배송 후 제품을 살펴본 첫인상은 이랬다. 그냥 '자석에 붙는 스테인리스 판'.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인덕션에 반응하는 냄비 바닥을 떼어낸 것과 같다. 여러 요리를 테스트해 본 후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인덕션 디스크와 구리팬과 동시에 인덕션용 코팅팬을 이용해 양갈비를 구웠다. 코팅팬의 열 보존율 수준을 배려하여 양갈비를 4개 구웠다.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인덕션 디스크 + 구리팬 조합보다, 그냥 인덕션용 코팅팬으로 굽는 게 고기의 크러스트가 더 잘생기고 더 맛있었다. '이러면 도대체 왜 디스크 위에서 구리팬을 사용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디스크 위에서 알루미늄 팬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1인분은 그럭저럭 가능했지만, 2인분은 화력이 낮아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지 못했다. 특히 이멀젼을 위해 팬을 저을 때 디스크가 바닥에 고정되지 않고 툭 튀어나가 버려 매우 위험했다. 결국, 그냥 코팅팬으로 다시 했더니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다. 다시 한번 절망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 제품의 단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원래는 인덕션 → 팬으로 직접 열이 가던 구조였는데, 디스크를 끼우면서 인덕션 → 디스크 → 팬이라는 한 번 더 거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팬과 디스크 사이에 생기는 공기층(Air Gap)까지 있다. 공기의 열전도율은 약 0.022W/mK로, 구리(320 W/mK)나 알루미늄(196 W/mK)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결국, 열이 팬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허공으로 새어나간다.
이런 열손실 문제는 인덕션 기술 자체의 기본 장점을 깨버린다. 인덕션은 팬 자체에 유도전류(Eddy Current)를 발생시켜 직접 가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디스크를 끼우면 팬에는 직접 유도전류가 생기지 않는다. 즉, 빠른 반응성도, 고효율성도, 인덕션의 최대 강점들이 전부 사라진다. 한참 동안 가열해도 열이 올라오지 않는 구리팬을 보면서 기가 막힌 심정이 들었다.
가열 중 디스크에 열이 과도하게 쌓이면, 팬을 들어낸 상태에서도 디스크가 계속 열을 흡수하게 된다.
이걸 방치하면 인덕션 상판 자체가 과열돼 고장 날 위험이 생긴다. 아예 구매 시 경고문구까지 친절하게 준다.
사용자가 조심하면 막을 수 있지만, 실수는 언제든 일어나는 법이다. 특히 저가형 디스크는 열처리 품질이 낮아 더 쉽게 휘거나 뒤틀린다. 이 경우, 팬도 상판도 동시에 손상될 수 있다.
처음에는 물 끓이는 용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실제 아마존 후기들에서도 물 끓이는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물 끓이는 정도라면 굳이 디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 인덕션이 반응하는 주전자나 냄비를 몇 만 원 주고 사면 끝이다. 문제는 '진짜' 요리를 할 때다. 특히, 파스타나 볶음류처럼 팬을 흔들어야 할 때, 디스크의 손잡이가 계속 걸리적거려서 제대로 조리가 안 된다. 팬을 휘저으면 디스크가 들썩거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심할 경우, 팬과 디스크가 따로 놀아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억지로 안 되는 걸 되게 만든 제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애초에 구조적으로, 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답이 없는 방식이다. 기존에 구리팬등의 고급팬을 산 사람이나, 인덕션 구매 시 기존 팬을 다 버리고 새 팬을 사야 하는 사람을 임시방편으로 달래기 위해 만든 제품일 뿐이다. 요즘은 웬만한 프라이팬들이 인덕션 겸용으로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살 필요가 없다.
첫째, 하이브리드 인덕션(인덕션 + 하이라이트 혼합) 방식을 고려하자. 다만 이것도 단점이 있다. 하이라이트 존은 반응이 느리고, 열손실이 있다. 잔열이 오래 남아 불편할 때도 많다. 주변 지인 중 하이브리드 방식을 구매하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봤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인덕션 디스크보다는 열 손실등이 훨씬 적고, 요리다운 요리를 할 수 있다.
둘째, 인덕션 전용 구리팬을 산다. 대표적으로 De Buyer의 Prima Matera 라인. 거의 유일한 인덕션 전용 구리팬이다. 가격은 명품 가격이니 각오하자. 나도 모비엘 팬이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살 용기가 없어서 못 샀지만 평가를 구글링 해보면 칭찬일색이다. 특히 셰프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은 것은 꽤 흥미롭다. 만일 구리팬을 사야 하는데 인덕션을 사용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대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다.
셋째, 휴대용 하이라이트나 가스버너를 따로 마련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라, 가정에서는 추천하기 힘들다. 굳이 저 팬을 사용하려고 가정에서???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덕션은 여전히 매력적인 조리기구다. 단, 인덕션 디스크는 쓰x기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나 같이 조리 도구를 통한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사지 마라. 두 번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