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새끼줄을 보고 뱀인 줄 알고 두려워하고 도망치는 앎, 있는 그대로의 새끼줄에 ‘무섭다’라는 분별심이 '더해진' 앎이요, 분별지(分別智)다. 망상(妄想)이다. 그런데 우리의 지식이 다 이러하다.
그러나 분별지는 생명을 가진 생명체의 필연적 오류다. 새끼줄을 뱀으로 아는 분별지야 착각이라 웃으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뱀을 보고 뱀으로 분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이름으로 분별하지 않는다면? 빨간 신호등을 빨갛다고 분별하지 못하고 길을 건넌다면? 이러한 분별은 살아가는 데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분별 위에 기어이 ‘좋다, 나쁘다, 예쁘다, 추하다’를 업어치기 하고야 만다. 있는 그대로에 유위(有爲) 조작이 덧칠된 오류를 낳고서야 만족한다.
어느 땅에 늙은 꽂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문정희 「늙은 꽃」
꽃은 말을 더하거나 생각을 더해 어지럽히지 않는다. 분별심을 더하지 않는 지혜가 무분별지(無分別智), 반야(般若)다.
머무름 없는 마음을 내어, 하되 함 없이 하라.
분별이 살기 위한 필연의 화살이면 한 번만 맞아라.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 맞았으면 즉시 빼 버려라. 더해서 아는 것은 지식이요, 뺌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반야-지혜다.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