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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환 Nov 17. 2022

효율 중독자

효율을 따지니 점점 사회와 어긋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다. 그 수많은 가치관 중에서 내가 선택한 가치관은 '효율성'이다. 효율이란 사전적 의미로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을 뜻 하는데 어렸을 적부터 귀차니즘의 성격이 강했던 탓에 점점 더 효율을 따지기 시작했다.


 물론 살아가면서 효율을 따져보면 생각보다 얻는 이익이 많다. 예를 들어 직장 혹은 사업을 했을 때 들인 시간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들이는 것, 적은 시간 공부했지만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나 역시 공부를 할 때는 최대한 기출문제 혹은 시험에 나올법한 것들을 따로 정리해 공부했고, 현재 다니는 공장 역시 시간 대비 월급이 많아서 선택했다. 


 최근에 잠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갈 때 자기 계발 서적과 투자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그들 역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라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이런 효율적인 삶을 살기 위해 매일 다짐하고 노력한다. 이렇게만 따지고 보면 효율을 따지는 것 (효율 중독자)은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삶은 효율을 너무 따져 일명 '효율 중독자'가 된 나머지 점점 사회와 어긋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내가 어긋나기 시작한 곳은 바로 '감정'이었다. 감정? 감정이 효율과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나의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효율을 중시한 나는 감정의 영역에서도 효율을 중시했고 그 결과 화를 내거나 논쟁을 하는 것,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할 때와 같은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깝기 시작했다. 그 결과 누군가와 대화에서 가끔 트러블이 발생하면 싸우기보다 회피하고, 나와 관련이 없으면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 누군가 넘어져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이 이야기를 왜 굳이 나한테 하는 걸까? 시간아 깝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 가족이 다쳤다고 하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내가 사는 사회는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 투성이다. 


이는 점점 심해져 여자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할 때면 "근데 이거 해결할 수도 없는데 굳이 계속 이야기해야 할까? 이런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좋지 않아?"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여자 친구가 무슨 감정에도 효율을 따지냐는 말을 해줘서 나는 연애라는 감정에도 효율이 들어간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두 번째로 작은 변수에도 어긋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았을 때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잘라서 계획을 세웠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해보고 등등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백수라는 말을 들었을 뿐 어느 직장인 못지않게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의 효율성을 따진 계획에는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변수'이다.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밥을 먹으려 봤는데 반찬이 없거나, 하체 운동을 하려는데 시작과 동시에 무릎이 아파서 못하겠거나 등의 변수가 발생하면 시간은 점점 뒤로 미뤄졌고 나에게 그것은 남은 일들을 제 시간 안에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일의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았고 마치 시간에 맞춰해야 하기에 막무가내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당연히 그 결과물들의 성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하나도 제대로 끝낸 것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는 더 큰 강박으로 다가왔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마지막으로 돈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앞서 돈을 벌기 위해 효율적으로 썼던 시간들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큰 성과가 없을뿐더러 무엇을 살 때 제품의 퀄리티 보다 돈을 따지는 일명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오히려 5만 원 주고 사면 몇 년을 신을 신발을 3만 원 주고 몇 달 만에 떨어져 버리거나 핸드폰 필름을 싼 걸 써서 금방 찢어져 다시 새로 사는 경우가 생겼다. 또 12년의 세월 동안 여드름 피부로 고생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피부에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이 아까워 그냥 여드름 제품만 사다 발랐는데 결국 심해져 피부과 치료를 받았다. 역시나 돈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보자는 나의 본질이 결론적으로는 더 많은 돈을 쓰게 만들었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효율적인 것을 하는 게 조금 더 유익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적당히 해야 된다는 것을 나의 사례를 보며 깨달았으면 좋겠다. 살아가는데 가끔은 비효율 적인 일에 감정을 쏟고 돈을 써야 하는 일도 생기며 친구들의 만남이 나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들 혼자 사회를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매번 거절하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비효율적인 것도 좋지 않지만 모든 일에 앞서 효율을 우선시하는 일은 더 큰 비효율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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