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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환 Nov 01. 2022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회사만 때려치면 내 삶의 주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백수였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 자의든 타의든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때가 있다.  그걸 보고 우리는 흔히 백수라고 한다. 그중 나는 자발적 백수에 속한다. 다니던 회사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업무 스타일, 어처구니없는 승진 시스템 사실 중소기업이라면 당연하지만 나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다. 유튜브나 SNS에서도 말했듯 계획 없는 퇴사는 지옥과 같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나름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 그나마 돈이 되는 일을 찾아 하기로 했다. 그래서 퇴사를 할 때도 누군가 "이제 곧 백수네~"라고 놀릴 때 "아니요 저는 이제 곧 제 삶의 주인입니다."라고 멋진 말을 하며 나왔다.


  퇴사 후 나는 너무나 기뻐 날 뛰었다. 그동안 못했던 평일 여행이나, 친구들과의 만남, 늦잠 등을 하며 이제야 내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삶의 주인이라고 외치며 살아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잠자리에 드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뭐하지?'. 이 말을 직장인들이 들으면 '아주 살맛 났네 살맛 났어 부럽다 백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백수를 한 번이라도 조금 길게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생각은 마냥 기쁘고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저 생각을 하면서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막연한 두려움.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안대까지 착용하고 있는 듯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분명 내가 그토록 원했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직장을 다닐 때 부러웠던 삶을 살아가는데 왜 이렇게 두렵고 불안할까. 통장 잔고는 점점 바닥이 드러나고, 주변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냐며 물어볼까 두려워 자리를 피했다. 내가 해야 할 목록을 적어둔 종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부모님은 맨날 걱정을 하셨다. '이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간다고 다짐했는데 이게 뭐야' 나는 퇴사 후 한 달 뒤에야 비로소 내가 백수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렇게 살면 안 돼! 정신 차리자!' 백수가 되었다고 실감이 나니 드디어 몸이 움직이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기 전 나의 객관화를 위해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자... 내가 가진 게... '나이 29살, 마트 경력 2년 4개월, 좋아하는 것 영화보기 여행하기, 싫어하는 것 술, 운동 나온 학과 등등 나를 객관화 하자 나의 상황을 정확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이 곧 30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경력은 있지만 더 이상 그 경력을 살리고 싶지 않고, 대학을 졸업해 전공을 하지 않아 까먹은 지 오래, 자격증은 그 흔한 컴퓨터 자격증 하나 없고, 영어점수는 토익 600점. 한마디로 요약하면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 정말 답이 없구나. 



 내 삶에 대한 절망을 느꼈던 그 순간 내가 했던 단순한 생각은 바로 부자들의 삶을 엿보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저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만 검색하면 손쉽게 부자들의 삶을 볼 수 있으니 침대에 누워 부자들의 삶을 엿보기로 했다. 드디어 내 삶이 바뀌는 것인가?! 하며 기대에 찬 마음으로 몇 시간의 시청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미'였다. 


 이미? 이미가 뭐야?라고 궁금해할 것 같아 대담하면 그건 내가 영상을 다 보면 꼭 했던 말이었다. '이미'성공했으니까 저런 말을 하지, '이미' 주변에 성공한 친구, 가족들이 있었네, '이미' 저기는 레드오션이야 등으로 모든 영상 후기 앞에 '이미'를 붙여 말하는 것이다. 

'이미'라는 말을 앞에 붙여 말하자 모든 것은 핑계가 아닌 합리적인 이유가 되었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찾은 그저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을 허비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나만 너무 게으르고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 몇몇의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를 직장동료들에게 들려줬을 때도 나의 핑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답을 했다. 심지어 그건 직장 동료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 부모님, 친척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맞다. 


이렇게 보면 정말 일을 오래 쉬었던 백수들이 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지, 왜 그 무엇도 할 의욕조차 없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나도 몸과 마음 모두 진정한 백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의욕도 없는 진정한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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