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백수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독서를 하거나, 영어공부, 컴퓨터 공부 등 각종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해줬다. 그래서 나는 그중 가장 쉬워 보이는 독서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갖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하루 8시간 독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도서관에 가는 습관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도서관에 있는 8시간 동안 정작 책을 읽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머릿속에 온통 잡생각이 나서 30페이지도 채 읽지 못했다. 또 실패한 것이다. 달라진 건 그저 침대에 누워있는 백수에서 도서관에 가는 백수가 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마저도 엄청난 변화라고 주변에서 응원해 줬지만, 그런 응원을 받을수록 나는 이런 것조차 응원받는 사람이구나.. 하는 우울감이 더 해졌다.
그렇게 우울한 날을 보내던 어느 저녁날 나는 이 우울감을 전환하기 위해 귀여운 반려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중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EBS에서 방영하는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인데
평소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제일 중요한 이유는 다시 보기가 무료였다. 한 마디로 돈 없는 백수인 내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흔히 보는 강아지의 문제행동을 교정해주는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고양이의 문제 행동을 교정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고양이는 그냥 알아서 잘 크는 줄 만 알았는데 뭐가 문제가 있을까 싶지만 아니다. 물론 강아지처럼 과격하게 사람을 물고 뜯지는 않지만 분명 문제행동을 한다.
프로그램 중 내가 본 고양이는 식탐이 많은 어느 고양이었다. 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밥을 주면 엄청 빠른 속도로 먹고, 다른 고양이의 밥도 뺏어 먹었다. 그리고 집사(고양이를 돌보는 사람)가 먹는 음식을 낚아채 숨거나, 심지어 싱크대에서 나는 음식 냄새에 반응해 싱크대를 뒤적거렸다. 집사는 고양이가 식탐이 많아진 이유는 중성화 수술 때문이라 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영상으로 보고 배운 것으로 고양이의 식탐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사료도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 정상 급여량 보다 조금 주며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의 식탐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의사 선생님이 등장했다. 그는 고양이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영상을 분석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고양이가 식탐이 많은 이유는 중성화의 영향도 있지만 그냥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집사도 TV를 보고 있는 나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중성화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냥 배가 고파서 그런 거였다니. 심지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에 비해 활동적이라 비만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현재 약간 마른 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키 180에 60킬로인 운동선수에게 밥을 적게 주니 그냥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이다.
원인을 알고 나니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저 밥을 많이 주고 급하게 먹지 못하게 넓고 약간은 장애물이 박혀있는 그릇으로 바꿨다. 그렇게 며칠 만에 수많은 방법으로도 줄여지지 않았던 식탐이 사라지고 문제 행동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걸 본 나는 놀라웠다. 물론 고양이의 며칠은 사람의 몇 주 혹은 몇 개월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원인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줬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확하지 않은 원인 파악이 얼마나 손해를 입히는지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원인 파악을 정확히 하지 않은 거라면? 나는 이제껏 그저 나는 독서를 싫어하고 집중력이 약해서 나는 어쩔 수 없다며 거의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다른 원인이 있다면 나도 저 고양이처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나는 독서를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희망찬 마음에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물론 수의사 선생님처럼 누군가 나를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나의 원인을 파악해 주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을 제일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다. '라는 말이 있듯 나는 스스로 정확한 원인을 다시 파악해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평소처럼 행동을 시도하던 중 나는 새로운 원인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여태까지 '내가 읽고 싶지 않은 분야의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용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재미가 없으니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쏟아진 것이다.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했냐고 묻는다면 그 당시 나는 독서에 무지했고 그저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었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분야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러자 그럼 내가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분야는?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사실 나는 예전부터 작가가 되는 것을 꿈꿔왔고, 항상 책을 출간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주변에서 작가로는 먹고살기 힘들고, 나 역시 그것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느껴 눈앞에 닥치는 대로 취업을 하고 돈을 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본질을 잊고 그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마치 나의 원래 꿈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냥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도 전의 유튜브 영상처럼 '이미'라는 말만 튀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나의 원인 파악이 이번에는 정확한지 알기 위해 내가 관심 있는 글쓰기, 책 출간에 대한 도서를 읽어봤다. 그러자 기존의 책 보다 100페이지 이상 두꺼운 책을 5시간 동안 화장실 한번 가는 것 빼고 쉬지 않고 읽었다. 심지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이 많아 노트에 메모를 하기도 했다. 결국 나도 그저 한 마리의 동물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덕분에 요즘은 매일 매일 독서를 통해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여태 무엇인가 싫었다면 그것의 원인을 다시 한번 정확히 파악해 보길 바란다. 내 친구도 자기가 마라탕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그 식당이 맛이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다른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