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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ul 26. 2021

노는 언니들의 힘

2020 도쿄올림픽 중계를 보며


나는 스포츠 무지렁이다. 

아무리 내가 헬스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수영, 요가를 해도(지금은 다 안 함) 그건 순전히 내가 건강하기 위함이지 스포츠를 즐기거나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2002 월드컵 때, 하도 주변에서 강요를 해서 나도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에는 친구들과 맞추어 빨간색 티셔츠를 챙겨 입었지만 - 그때는 그걸 안 입으면 정말로 매국노 취급을 당했다. 정말 말도 못 했지 그때는, 신이 난다고 거리에서 떼창을 하질 않나, 멀쩡한 차 위에 올라가 방방 뛰어서 고물을 만들지를 않나. 솔직히 속으로 단체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는 어디를 가도 그 얘기뿐이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밤새워 경기를 보고 졸린 눈으로 와서는 지난 새벽 치러진 경기 얘기를 하다가 책상에 엎어져 잤다. 일상적으로 자고 온 나는 그런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재밌다고 밤까지 새워가며 경기를 보는 거야? 아마 그것은 가풍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은 밥벌이를 하느라 취미나 운동을 즐길 여유가 전혀 없었고, 언니는 잠시 집 앞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받았으나 얼마 안 가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스포츠는 오직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억지로 하는 활동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몸을 움직이고 근육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 꼴찌나 면하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런 내가 이번 2020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이유는 단연코 아는 얼굴이 늘어나서였다. 그 아는 얼굴이 어디서 나왔냐, 바로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다. E채널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전설적인 골퍼 박세리를 중심으로 남현희, 곽민정, 정유인, 한유미 등 여성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예능이다. 박세리에게 왜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냐고 묻자 세리 언니는 '남자 선수들은 은퇴 후 TV에 많이 나오는데 여자 선수들은 나올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 답했다. 여성 선수들이 더 많이 얼굴을 알리기 원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워낙에 시청자들과 친숙한 예능의 형식으로 다가오니, 운동 얘기를 실컷 해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게다가 여자들끼리 웃고 떠들고 게임하고 거칠게 노는 장면은 여중, 여고를 지나오며 몇 년이고 보아 왔던, 내가 놀아왔던 친숙한 모습 그 자체였다.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며 여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의 강요 속에서 잃어버린 어떤 원형에 가까웠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운동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이 있었고 여성이기에 느껴야 했던 부담이나 압력, 강요도 있었다. 그런 감정은 운동은 전혀 모르는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살며 느껴왔던 부분이라 더욱 공감이 갔다. 여성 직원과 남성 직원의 연봉 차이가 나듯, 여성 선수와 남성 선수는 연봉 차이가 컸고, 상금도 차별이 있었다. 팀킴이 나와서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속팀과 지도자로부터 당한 갑질 때문에 마음고생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래도 견디고 끝까지 포기 않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또한 은퇴 후에도, 임신과 출산을 한 뒤에도 어떻게든 자기의 자리를 찾으려고 지도자로, 해설가로 나서는 모습에서도 경력단절을 늘 목에 걸고 일하는 동시대 여성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부상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자신의 종목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펄쩍 뛰는 사람들. <노는 언니>를 보는 동안 그 마음이 무지렁이인 내게도 고이 전해지고 있었다.   


올림픽 중계를 틀었더니, 펜싱은 남현희가, 농구는 김은혜가, 수영은 정유인이, 배구는 한유미가 해설을 하고 있었다. 벌써 금메달을 척척 따온 양궁에서는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기보배 선수가 해설자로 앉아 선수들을 향해 명언 폭격을 날리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때론 침착하게 설명해주고 때론 흥분하여 소리 지르는 걸 듣자니 귀에 쏙쏙 들어왔다. 감격하여 울먹이는 목소리까지 알아챌 때는 내 마음도 같이 일렁였다. 여자 농구를 틀어보니 강이슬 선수와 김단비 선수가 뛰고 있었다. 그 아는 얼굴들을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다. <노는 언니>에서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던 김온아 선수는 대체 언제쯤 볼 수 있는 건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애가 탄다. 


처음에는 그 대단한 선수들이 대체 왜 힘들게 예능에 나올까 생각했는데 나 같은 사람까지 팬으로 만드는 이 놀라운 효과에 이제는 박수가 나온다. <노는 언니> 덕분에 2020 도쿄올림픽은 내가 즐기는 첫 번째 올림픽이 되었다. 메달의 색이나 개수에 상관없이, 앞으로 또 어떤 아는 얼굴들을 만나고 새로운 얼굴들을 알게 될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이제 나도 스포츠 즐길 줄 아는 거야?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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