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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룸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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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r 11. 2024

구르프와 헤어롤


룸메가 머리를 길렀다. 거의 20년 동안 6미리미터 정도로 반삭발 상태였기 때문에 머리를 기른 것이 그도 나도 상당히 낯설었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 어느새 사십대가 되었다 -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건지 모른다. 그런데 이 남성이 긴 머리가 오랜만이다 보니 머리를 손질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 일단은 내가 단발머리에 드라이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얼추 비슷하게 흉내내 보기는 하는데, 앞머리가 영 어색한가 보다. 

어제는 앞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에 내가 제안했다. 

"그럼 너도 구르프를 해 보면 어때?"

"구르프가 뭐야?"

"고등학생들이 앞머리에 말고 다니는 거 있잖아. 동그란 거." 

"와, 평생 몰랐던 말을 머리를 기르니 알게 되네."

그렇다, 마흔이 넘어도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왜 구르프라고 부르지?"

"그룹에 'er'을 붙여서 그루퍼인 거 아냐? 밴드 중에 그런 이름이 있거든."

"아 머리카락을 그룹으로 묶어서 말아서? 근데 나는 그거 일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불렀으니까."

찾아보니 구르프는 '클립'의 일본식 표기인 '쿠립푸'가 변형되었을 것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추측해 놓았다. 요즘은 구르프가 일본식 말이라고 해서 '헤어롤'로 변경해 사용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헤어롤도 익숙하다. 


"근데 말야, 일본식 표기든 영어 표기든 어차피 다 우리말은 아니네. 별로 바꾸는 의미가 없는 것도 같네."

"이 사람아, 일본식은 예전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 정치의 상징이니 타파해야 하는 것이고, 영어식은 지금 우리가 식민지 현재진행 중이니까 영어식으로 하는 게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그게 현대에 맞는 거지."

"그러네 지금은 미국 식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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