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딱히 정해진 일과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생활양식은 있다. 그날의 목표한 분량을 마치면 노트북과 아이맥을 끈다. 책상을 대강 정리하고 작업실에서 입는 패딩 조끼를 벗어 의자에 걸쳐 놓고, 작업실의 불을 끈다. (마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의 전원을 끌 때도 있지만)
자기 전에 웹툰을 좀 봐야 하니까 노트북을 들고 인공눈물, 전화기, 손수건, 물을 마치던 컵을 들고 나와 컵은 주방 개수대에 나머지는 침실에 들고 들어간다. 기물을 얌전히 내 머리맡 협탁에 두고 씻을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는 손을 닦는다. 양치를 할 때도 세수를 할 때도 손을 먼저 닦아야 건강에도 피부에도 좋다. 손을 씻으면 양치를 한다. 양치는 총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치간칫솔 2 치실 3 칫솔질이다. 어금니 주변 잇몸이 힘이 떨어져 이 사이가 조금씩 벌어진 이후부터 그곳에는 음식물이 잘 끼는데 이것은 치실로도 다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치간칫솔을 써야 한다. 치실은 길게 빼서 손가락으로 단단히 감아쥐고 모든 이 사이사이를 통과시켜 준다. 그러고 나서 물양치를 한번 한 다음 치약을 칫솔에 짜서 양치질을 한다. 구석구석 특히 잇몸과 이 사이 부분을 열심히 바깥쪽 안쪽 모두 닦아주고, 이어서 물로 헹구면서 혀도 닦는다. 입에 물을 머금고 칫솔로 혀를 닦으면 혀클리너로 닦는 것보다 더 잘 닦인다. 구역질도 나지 않고. 그러고 나면 비로소 '양치' 카테고리가 끝난다. 양치를 이렇게 복잡하게 하게 된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치간칫솔도 하지 않았고 치실도 내킬 때만 했다. 그렇게 살다가 치과를 들락거리며 차츰 알게 되었지. 치과 치료비는 양치 습관에 달렸다는 것을.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딱 하나만 나에게 말해주겠다. 치실을 매일 해! 가끔 트위터에서 누군가 지금 중학생에게, 고등학생에게, 20대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러저러한 말을 하겠다고 쓴 걸 볼 때마다(보통 운동이나 공부나 주식이다) 나는 꼭 속으로 외친다. 아냐 치실이야. 얘들아 치실을 해야 돼.
이제 본격적으로 씻기에 들어간다. 먼저 폼클렌징을 쭉 짜서 젖은 손에 덜고 거품을 내어 얼굴에 비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손은 젖었고 얼굴을 말랐다는 점. 거품을 진하게 내서 얼굴에 문대면 선블록이 잘 지워진다. 물을 먼저 얼굴에 적시면 잘 안 지워진다. 유막이 어쩌고 하던데 아무튼 나는 이렇게 하고 있다. 한참을 문지르다가 얼굴이 좀 뻑뻑하다 싶으면 그때 물을 조금 묻히고 더 문지른다. 손끝 지문으로 모공을 문지른다는 느낌으로 하면 더 깨끗해진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을 빡세게 하고 이중세안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선블록 말고 다른 화장은 거의 하지 않으니까.
얼굴을 씻고 나서는 머리를 감는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 두피의 피지 분비가 늘어난 것 같아서 요즘은 두피가 잘 씻기는 느낌을 중시한다. 그래서 탈모샴푸를 쓴다. 나는 탈모는 없지만 룸메는 옆머리 탈모가 살짝 있어서 어차피 같이 쓰면 둘 다 좋다. 샴푸를 잘못 사면 두피에 뾰루지가 날 때도 있는데 그래서 정착한 제품은 '려'라는 제품이다. 두피는 잘 씻기고 머리칼은 너무 뻑뻑하지 않게 해 주어서 좋다.
샴푸 후에 몸을 닦는다. 비누를 묻혀서 그냥 손으로 몸을 문지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샤워타월로 문대기도 한다. 등의 유분은 잘 닦기가 힘들어서 따로 바디브러시를 쓴다. 샤워할 때 주의할 점은 정강이 부근을 너무 빡빡 닦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이 건조해서 겨울만 되면 피부에 탈이 난다. 피부과 의사는 제발 겨울에는 자주 씻지 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래서 정강이 쪽은 너무 문지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비누칠도 며칠에 한 번만 하도록 신경 쓴다. 그저 잘 씻으면 좋은 줄 알았는데 씻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니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가 보다. 수건으로 몸과 머리를 꼼꼼히 닦고 옷을 입고 욕실을 나온다. 주의, 얼굴의 물기는 남겨둔다. 스킨케어를 할 때까지 건조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성피부라 여드름이 잘 났다. 특히 제일 재밌어야 하는 20대 때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고 그래서 외모 부분에 늘 주눅이 들어 있기도 했다. 우리 가족들은 다 괜찮은데 왜 나만 이렇게 피부가 나쁘지? 어린 마음에 여드름은 큰 약점이 되었다. 약도 많이 먹고 병원도 양방 한방 다 오래 다녀봤다. 그래도 피지선이 활발해 나는 여드름은 어쩔 수가 없더라. 나고 또 나니 결국에는 흉터도 많이 남았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왕여드름이 나곤 한다. 그래서 나의 스킨케어는 대부분 피지와 각질 관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녁 스킨케어는 하루는 아하&바하 토너를 화장솜에 묻혀 닦아내고, 하루는 레티놀 크림을 바른다. 두 가지를 번갈아 하는 게 이제껏 실험 중 가장 좋았다. 그러고 나서 혹시 여드름 기미가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만 스폿 케어 제품을 바른다. 그 후 나이아신아마이드 세럼을 바르고(이것도 추가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로션이나 크림을 바르는데, 이때도 너무 기름진 제품을 바르면 안 되기 때문에 논코메도제닉(Non-Comedogenic) 제품인 세타필 로션을 바른다. 가끔 선물 받는 크림이 생기는데 여드름을 유발할 수 있으니 꽤 조심스럽게 쓴다. 로션까지 바르고도 건조한 느낌이 들면 그때 크림을 바른다. 그나마 주로 눈가나 목 부분이다. 따로 아이크림 등은 바르지 않는다.
얼굴을 마치면 이제 몸이다. 집에 보디로션은 거의 떨어지지 않게 한다. 아까도 썼듯이 다리가 건조하니 다리에는 꼭 로션을 발라야 한다. 여름에는 조금 소홀히 해도 괜찮지만 겨울에 로션을 잘 바르지 않으면 자려다가 건조해서 가려움에 깰 수도 있다. 몸 여기저기에 로션을 다 바르고 팔꿈치나 발뒤꿈치처럼 거친 부분에는 선물 받은 판테놀 크림을 바른다. 피부를 말랑말랑하게 해 준다나. 얼굴에 바르라고 받은 건데 이것도 여드름이 나기 때문에 몸과 목에 바르고 있다. 특히 건조해서 트러블이 생긴 부위에는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른다. 손에는 겨울이면 한포진이 올라와서 손에 바르는 강력한 스테로이드 연고가 또 따로 있다. 요즘은 그것까지 바르고 있다. 한 사람의 몸에도 부위에 따라 이렇게 성질이 다르다. 한 얼굴 안에서도 뺨이 다르고 콧등이 다르고 눈가가 다르니 말 다 했지. 인간이란 한없이 단순해 보이다가도 또 이렇게 구석구석 챙길 게 많다.
이제야 잘 준비가 다 되었다. 잘 준비가 너무 많아서 숨이 찰 정도다. 글로 쓰니 이렇게나 길다. 룸메가 이불을 폭 덮고 티브이를 보며 누워 있다. 옆 자리로 쏙 들어가 눕는다. 허리가 좀 아프다 싶으면 누웠다가 일어나서 곡물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3분 돌려 데워서 온다. 데우는 동안 그 앞에 서서 잠깐 스트레칭을 한다. 찜질팩 위에 허리를 대고 눕는다. 이제야 한숨을 쉰다.
이런 하루가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조금씩 더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애써 유지해 온 자유라는 것이 프리랜서라는 업무 형태가 어떨 때는 다 부질없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매일 별일 없이 지낸다는 것만큼 심심하다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아끼고 살뜰히 삶을 살아낸다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있을까. 나는 애써 심심하고자 한다. 애써 이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 이 삶이 가치 없다면 세상의 무엇은 가치가 있을까. 내게 주어진 생명을 소중히 하자.
오늘도 이렇게 잘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