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 수행평가 인터뷰
제주에 와서 몇 가지 일을 바쁘게 처리해서 넘겼는데, 입금이 된 것은 1건뿐이다. 제주에 오면서 빈 통장을 하나 준비해 유와 공동 생활비를 넣어두고 같이 썼다. 처음에 10만 원, 여기 와서 아르바이트로 번 현금으로 10만 원을 넣었고, 오늘은 5만 원을 넣었다. 이 5만 원은 어제 룸메가 송금한 돈이다. 룸메가 돈이 조금 생겼다며 보내준다고 했을 때, 또 마음이 찌르르했다.
이곳으로 떠나오던 날 멀리 공항버스가 보이자, 같이 짐을 놓고 기다려주던 그는 늘 갖고 다니던 카드지갑에서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게 쥐어주었다. 그 돈을 한사코 안 받으면서 눈물이 났다. 자기도 현금이 없으면서, 요리도 잘 못 하면서, 끼니를 챙기려면 시장에서 반찬을 사든 뭘 하든 현금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그 꼬깃한 지폐 한 장에 눈물이 펑펑 났다. 연애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이제는 진심으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구나.
낮에 혼자 있다가 룸메에게 전화를 했는데 오랜만에 꽤 오래 통화를 했다. 각자 먹은 음식 이야기며 떨어져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 지금 틀어 놓은 티비 채널까지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통신사에서 정액 시간을 다 썼다고 문자가 왔다. 통화 시간을 다 쓴 것은 참 오랜만이다. 일 년도 넘은 것 같다. 그동안 이렇게 오래 통화할 일이 없었는데.
저녁 나절에는 한 중학생이 트위터로 연락을 해왔다. 수행평가로 출판 편집자를 인터뷰하고 싶은데 응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다. 요즘 학교에서 이런 숙제를 많이 낸다고 하더니 나에게까지 인터뷰 요청이 오다니. 메일 주소를 알려줬더니 다섯 가지 질문을 보내왔다.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나 직업을 후회했던 적, 매력적인 점, 이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해줄 말 등이었다.
답장을 쓰면서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지나갔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었을까. 왜 그렇게 외로웠을까. 책 외에는 깊이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없었다. 친하게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활짝 열지 못했다. 이 학생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을까. 대체 왜 출판 편집자가 되려고 할까.
저녁은 집에서 종종 해먹던 잔멸치덮밥을 만들었다. 싱겁게 먹는 유를 위해 여러 번 헹구어 끓였더니 간이 좀 부족해서 새우젓 국물로 약간의 간을 더했다. 고명으로는 달걀과 파를 올렸다. 유가 입에 맞는다며 잘 먹어주어서 다행이다.
오늘 빨래바구니를 들여오는 사이 니은이가 집을 급습했다. 점잖게 집안을 천천히 한바퀴 둘러보았다. "너희들 어찌 지내나 궁금했서 왔지-" 하고는 다시 얌전히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