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들
A는 마른 몸에 작은 키, 귀여운 얼굴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쩐지 친근함이 느껴져서 내가 먼저 말을 걸어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예술가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새롭게 A가 멋있어 보였다. 자신이 예민한 만큼 친구의 상태와 감정도 예민하게 잡아내는 그녀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몸의 이상한 점까지 알아 맞추는 신기한 능력자다. 최근 A에게 아주 슬픈 일이 생겼는데, 그녀는 어젯밤 나와 채팅을 하며 사실 슬프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슬픈 것 같았다. 밤에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거는 것도, 길게 한탄을 하는 것도 슬픔 때문인 것 같았다. 나도 섬세하게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그런 건 늘 맘처럼 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곤 해줄 것이 없었다. 슬퍼하는 친구를 가만히 안아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은 좀 멀리 있으니까.
B는 천생 여자로 보이는 외모를 가졌다. 흰 얼굴에 큰 눈,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작은 키에 마른 몸. 게다가 그녀의 여성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정장풍 옷차림까지. 마치 태어나 지금껏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옆에서 불이 나도 가만가만 걸을 것 같은 그런 외적 이미지를 가졌다. 그러나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항상 한번은 돌직구를 맞는다. 거침 없이 생각을 말하고 그 생각이 어느 때는 쭉쭉 앞서나가서, B의 생각의 경계는 과연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외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늘 연약하고 남들에게 기댈 것만 같지만 막상 그녀는 혼자서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하는 독립적인 성격이다. 늘 일도 똑부러지게 해내고 성취욕도 강하다. 보이는 면과 실제의 행보가 상반된 이미지여서 그 점에 늘 매료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
C는 키도 크고 인상도 진해서 다들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친구 중에 가장 마음이 여리다. 혼자 있으면 자주 감상적이 되고 곧잘 운다. 같이 길을 걸으면 저보다 한참이나 작은 나에게 팔짱을 끼는 귀여운 행동을 한다. 매년 꽃놀이도 가고 바다도 좋아하고 샤랄라한 원피스도 좋아하는 C. 같이 있으면 자꾸 서로에게 잔소리만 늘어놓게 된다. 몸 좀 잘 챙겨라, 그 남자 별로다, 집에 일찍일찍 들어가라, 그렇게 가슴 파인 옷 입지 마라, 그렇게 화장 야하게 할거냐 등등. 서로 화내면서 위해 주고 아무렇지 않게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오랫동안 친구여서 그런지, 농도 짙은 한 시절을 같이 보내서 그런지 주고받는 말들에 뼈도 있고 살도 있다.
오늘 문득 이 친구들이 생각났다. 내가 섬에 있어서 그런가 다들 제주를 좋아해서 그런가, 내 여자 친구들이 보고 싶다. 육지에 있어도 자주 연락도 안 하고 자주 만나지도 않으면서 이건 또 무슨 죽 끓는 감상인지 모르겠다.
참. 오늘은 미역국을 끓였다. 육지 집에서 가져온 다시백 넣고 육수를 낸 뒤 미역을 불리고 씻어 넣어 30분 이상 끓이고 마늘 넣어 더 끓이고, 액젓과 소금으로 간. 제주니까 물미역으로 막 생생하게 그런 거 아니고 마트에서 파는 평범한 건미역, 그것도 자른 미역으로. 깔끔하고 시원하게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