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벌레 퇴치, 강제 산책, 알모의 시간

by 윤준가




아침부터 찐다. 방이 (과장해서) 사우나 같았다. 덥고 습해서 숨이 막히고 축축 늘어지고. 기후가 극단적이야. '어쩜, 벌써 더위 먹는 기분이야.' 하며 아침밥을 준비했다. 어제 만든 감자채볶음과 버섯덮밥소스를 준비하고, 새로 어묵볶음을 하고 상추를 씻어 쌈장과 함께 먹었다. 변색되어 가는 양배추를 어묵볶음에 넣어 해결.

유는 오늘 제주시내에 나가 전시를 보고 온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못 나감) 애들(고양이) 점심을 주니 사료가 한 포대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 집주인께서 "사료가 한 포대 남으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라고 하셨기에, 미국에 가신 집주인분께 연락을 드렸다. 연락을 드리는 김에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도 약간 말씀을 드렸는데, 지네 얘기도 했다. 너무 놀랐으니까. 그러자 그분도 걱정하시며 원래 매년 약을 치는데 올해는 소홀했다며 바로 업체랑 연락을 하셨다.

내일 오신다고 했는데 업체에서 연락을 주셔서는, 30분 후에 가도 되냐고 물으셔서 괜찮다 하고 얼른 집을 치웠다. 널려 있던 빨래를 걷고 음식물은 냉장고 안으로, 고양이들 방문은 닫아주는 것으로 끝. 고양이가 안에 있을지 모르니 그곳은 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창고에 물건들이 많아서 애들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업체분은 나보고 1시간만 나갔다 오라고 했다. 약을 치고 연기가 좀 생기고 그러니까 나갔다 와서 환기하라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선블럭을 바르고 집을 나섰지만 오래 걸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가까운 점빵 옆 계단에 잠시 앉아 있는데 어쩐지 벌레들이 무는 것 같아 일어섰다. 아주 천천히 동네 길을 걸었다. 보통 다니는 길 말고 건너편 길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보았다. 사람 한 명 지나지 않는 길, 집안에서 들리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 평상에 앉아 무언가 작업하시는 어르신들. 그곳에도 익숙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집쪽으로 돌아왔다. 업체에서 작업이 끝났다고 연락을 주셨다. 집에 가니 니은이가 식당 문 닫고 어딜 갔냐며 잔소리를 했다. 자기도 밖에서 놀고 왔으면서 나 한 30분 나가 있었다고 그러다니 참나. 집안에 약 기운이 돌아야 할 것 같아서 마당에 앉아 한참 고양이들이랑 놀다가 들어갔다. 환기를 시키고 집을 둘러보니 벌써 벌레들이 조금씩 죽어서 나온 게 보였다. 그냥 안 보이게 죽으면 좋을 텐데 왜 나와서 죽는 걸까... (아무 말, 무서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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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086.jpg?type=w773 산책하며 본 동네 풍경. 제주의 평범하고 아름다운.


IMG_9088.jpg?type=w773 잔소리하는 니은. 자기도 나갔다 왔으면서...


IMG_9130.jpg?type=w773 인간에게 호통친 뒤 석양을 보며 마음을 다스림.


IMG_9132.jpg?type=w773 돌담과 고양이는 찰떡 궁합.


IMG_9131.jpg?type=w773 길냥이 두 마리. 얘들 점점 더 겁이 없어진다.


IMG_9133.jpg?type=w773 이제 니은이는 이렇게 가까이서 찍을 수도 있다.




저녁에는 윗집 언니가 초대해 주셔서 시내에서 돌아온 유와 함께 놀러 갔다. 윗집 언니는 독채 민박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오늘 손님이 없어서 집 구경도 시켜줄 겸 저녁도 함께할 겸 부르신 것이다. 들어간 순간 좋은 향과 예쁜 조명이 훅 들어왔다. 그리고 알록달록하면서도 현란하지 않고 차분하며 아늑한 분위기의 방. 복층 구조라 위가 침실인데 역시 아늑하고 깔끔한 것이, 잠이 절로 올 것 같은 기분. 전부터 신기한 점이 색도 많이 쓰고 소품이 많으면 현란하거나 화려해지기 십상인데 그걸 지저분하지 않고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로 꾸미는 솜씨가 신기하다. 그건 정말 '감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탁자 위에서 우리를 기다린 건, 유명한 어머니통닭! 지난 번 환영회 때 허겁지겁 먹었던 바로 그 통닭! 언니가 고흥까지 다녀오셔서 맛있는 치킨을 마련하셨고 맥주도 준비해 주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마셨다. 깨끗하고 아늑한 곳에서 좋은 책들을 보고 즐거운 대화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기분이 좋아진다. 자리를 파하고 나오니 10시가 넘었다. 어제가 보름이었다는데 오늘도 닭이 크고 밝았다. 밤공기가 좋아 괜히 마음이 들떴다. 제주에 와서는 차가 없이는 밤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날이 드물다. 이곳에 잠시 머무는 우리지만, 좋은 이웃이 생겨서 기쁘다.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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