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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y 26. 2017

33일

아기 고양이와 라마네, 평화로운 중고장터



아침에 일어나 고양이들 밥 주러 갔는데 또 커다란 지네가, 이번에는 고양이 방 문지방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데 어찌 건드릴 수가 없어서 그냥 뒀다. 지네는 샷시 틀 사이로 들어가더니 끼어 있었다. 혹시 고양이들이 물릴까 걱정되었지만 고양이들이 밖에서 지네를 한두 번 봤겠나 싶기도 하다. 나보다 대처를 잘하지 않을까. 요즘 더워져선지 고양이들이 물도 많이 먹는다. 저녁에는 좀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집에 온 사람도 없고 나도 유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누가 고양이 물 그릇에 사료를 한 주먹 정도 말아 놓았다. 고양이가 그랬다고 치기엔 너무 많은 양인데. 혹시 누가 물 그릇에 토했나 싶었지만 고양님들이 알려줄 리 없으니 별 말 없이 새로 갈아주었다. 

윗집 언니가 송당나무에 나무 사러 가신다고 하여 나와 유가 따라나섰다. 송당나무는 지난번에 아름다운 정원과 온실에 반해 한참동안 감탄만 하다가 온 곳이다. 오늘은 천천히 식물도 보고 차도 마시고 왔다. 두 번째 왔다고 좀 편한 느낌이었는데 아니 글쎄 그곳에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지난번엔 어른 고양이 두 마리가 자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기 고양이들만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역시 아기들은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넘어뜨리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쳐댔다. 너무 예뻐서 한번 안아봤는데 애들이 싫어해서 놓아주었다. 직원분과 짧게, 몇 년 전에 산 국화과의 꽃화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사왔을 때만 꽃이 있었고 그 후로 전혀 꽃은 없이 그저 줄기와 잎만 쑥쑥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 사람마다 궁합이 맞는 식물이 따로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한동안 식물킬러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  강인한 아이들만 내 곁에 살아남아 있다. 집 떠난 한달 동안 식물들이 어쩌고 있는지 궁금한데, 룸메가 잘해주겠지. 
"얘는 잎사귀가 쪼글쪼글해지면 그때 물을 줘. 한 달에 한 번만 줘도 돼. 얘들은 여름이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주면 돼. 싱크대에서 흠뻑 주고 물 빠지면 다시 옮겨 놓구." 






점심은 송당리 온 김에 라마네 쌀국수. 예전엔 '라마네 의식주'라고 해서 소품과 옷도 파셨다는데 이제 식당만 운영한다. 배우 방중현 씨네 가게다. 오늘은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도 하셨다. 나는 기본 쌀국수를 먹었고 언니는 라똠쌀국수, 유는 제철야채볶음과 밥. 모두 독특하면서 맛이 있었다. 최근 흔히 먹는 프랜차이즈 쌀국수들은 대체로 맛이 일반화돼 버렸는데, 이곳은 특징이 있으면서도 크게 낯설지 않은 균형 있는 맛이었다. 다음에는 반미를 먹어봐야지. 다음에 또 올 수 있으려나? 

나는 쌀국수를 먹을 때 고수를 따로 조금만 달라고 해서 넣어 먹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한다. 고수 노력파랄까? 고수의 향에 놀라고 잘 못 먹기도 하지만 앞으로 거리낌 없이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습하는 중이다. 고수에 익숙해지게 되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한 다발 정도 넓어질 것 같아서다. 더 어른의 입맛이 되고 싶어. 


라마네 고양이 감자 너무 귀여워





잠시 집에 돌아와 윗집 언니는 나무를 놓고 오시고, 우리는 고양이들 점심을 주고 빨래도 널고 다시 만났다. 세화리에서 중고장터가 있다는 소식에 잠깐 구경을 가기로 했다. 에릭 에스프레소라는 카페 마당에서 열렸다. 얕은 오르막 위에 위치한 카페였는데 잔디 위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셀러들이 어찌나 평화로워 보이는지, "평화로운 중고나라"가 바로 여기 있구나. 카페로 올라가 내려다 본 바다도 아름다웠다. 높은 건물이 없고 바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한결 여유로워지고 마음이 열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닐까. 금속공예 하시는 분께 아룸다운 책갈피 하나를 샀다. 오각형 모양 장식이 달렸는데 책 머리에 꽂으면 마치 귀고리 꽂듯 착 들어가는 모양새에 반했다. 마음 같아선 동그라미, 네모, 육각형 모두 세트로 사고 싶었지만 그럴 돈은 없고. 

외출의 마지막은 화려하게 요요무문에서 마무리했다. p언니는 종일 혼자 점심도 거르고 일하느라 바쁘셨다. 아유 이럴 줄 알았으면 빵이라도 사올걸. 흑당라떼를 달게 부탁했다. 윗집 언니가 분홍색 맥주를 드셨는데 다음엔 나도 그걸 먹어야지. 낮술이야말로 여행자의 특권, 프리랜서의 특권. 

아까 잠깐 세화오일장 근처에 서 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어디서 왔냐 하셔서 원당에서 왔다고 하니 당신은 분당에서 오셨다고. 지금은 우도에 산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조만간 우도에 가려고요. 웃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지나가는 사이도 산뜻하고 좋다. 제주라서 가능한 만남들. 




++ 일기를 다 쓰고 발목 찜질을 하려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담다가 수량이 많았는지 넘쳤다. 
손등을 화들짝 데었다. 그래서 지금 발목에는 온찜질을, 손에는 냉찜질을 하고 있다. 뭐지 이 모자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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