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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y 28. 2017

35일

벨롱 야시장




요즘은 아침밥을 각자 알아서 챙겨 먹고 있다. 나는 보통 일어나면 배가 고파서 유가 일어나기를 못 기다리고 먼저 먹는다. 어제 끓인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간단히 먹었다. 낮에는 별일 없이 발목 찜질과 쓰레기 버리기, 고양이와 놀기, 빨래로 보냈다.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오늘은 유리병 버리는 날) 골목 어귀로 나가는데 뒤에서 빨간 자동차가 왔다. 윗집 언니다. 언니는 오늘 야시장으로 진행되는 벨롱장에 나가신다고 했다. 친구랑 맛있는 음식을 판매한다고. 안 그래도 벨롱장에 한번은 가보고 싶었다. 벨롱장은 세화 바다 앞에서 열리는 아트마켓이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몇 테이블이 모여서 시작한 마켓이 어느새 제주의 명물이 되었다. 이제는 동쪽을 오는 관광객이라면 꼭 체크하는 행사가 되었다. 재작년에 놀러 왔을 때는 시간이 안 맞아 못 갔고, 이번에는 초반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그다음에는 발목 때문에 못 갔다. 들리는 말로는 처음보다 규모가 커진 만큼 색깔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처음의 색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울의 많은 마켓들도 그렇게 되지 않았던가. 그래도 오늘은 야시장이니까 또 그 나름의 분위기를 기대하며 외출 준비를 했다. 떡국떡이 아직 많이 남아서 간식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어제의 강행군으로 발목 상태가 안 좋았기에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비가 1500원 정도. 둘이서는 3000원이다. 여기 집에서 세화리까지는 택시비가 5000원 나온다. 각자 1000원씩 더 내서 편하게 갈 수 있는 셈. 장 구경을 하러 돌아다니고, 장을 보러 마트까지 걸어가야 하니까 택시를 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정말 더 무리하다가 발목이 영 안 나으면 낭패다. 

벨롱장은 기대보다는 재밌었다. 일단 윗집 언니네 부스를 찾아서 음료와 음식을 샀다. 온갖 고급스러운 열대과일이 들어간 트로피칼 에이드와 제주 귤 소스에 절인 돼지고기와 익힌 채소가 들어간 요리였다. 계단을 찾아 바다 앞으로 가 천천히 바다를 보며 음식을 먹고 마셨다. 오랜만에 맛보는 좋은 향신료들이 입맛을 부드럽게 돋우었다. 이국의 맛이다. 

바다에 들어가 있는 분들이 보였다. 작업복을 입고 양동이를 들고 있는 걸로 봐서 뭘 채취하시는 것 같았다. 해변의 다른 쪽으로는 초등학생 두 명이 책가방을 메고 하교 중이었다. 바다를 거쳐 돌아가는 아이들. 풍경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바다는 부드러운 물결을 일으키며 물을 들여오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빠르게, 조용히 힘차게 차오르는 바다. 

계속 부스들 구경을 하다가 중고 옷을 파는 분께 흰 셔츠와 반바지를 샀다. 셔츠는 얇게 덧입을 옷을 안 가져와서 카디건 대신으로 입고, 반바지는 잠옷으로 입으려고 한다.(가져온 반바지가 청바지뿐이다.) 둘 다 편한 소재에 색도 마음에 든다. 셔츠는 3000원, 반바지는 2000원에 샀다. 유는 귀여운 민소매 티를 샀다. 





중앙의 공터에서는 한 남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내가 구경을 시작했을 땐 공연이 끝나고 다음 순서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나와 이렇게 말했다. 
"다음 무대는 김재신 애견학교에서 개 훈련 시범이 있겠습니다." 
건장한 남성 한 분과 커다란 셰퍼드 한 마리가 나왔다. 남성과 개는 같이 보조를 맞춰 걷고 공을 던졌다가 받아오고 아령처럼 생긴 나무 장난감을 던지며 착착 움직였다. 셰퍼드는 크고 빠르고 힘도 아주 센 것 같았다. 시범이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훌륭한 시범이었다. 마켓에 놀러 나온 다른 개들도 셰퍼드의 시범을 진지하게 관람했다. 음, 진짜 관객은 저쪽인가. 

마켓 초입에서 파는 김말이 하나씩 입에 물고 나와 마트까지 천천히 걸어가 장을 봤다. 몇 가지 채소와 우유, 물, 휴대용 티슈 등을 샀다. 택시를 불러 돌아오는데 아까 우리를 태우고 나왔던 기사님이었다. 정말 좁은 마을. 

어제, 오랫동안 못 본 해지가 제주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정이 짧고 일행도 있어 연락을 안 했다고 한다. 우연히 만날까 싶어 어제 일부러 요요무문에 있었다는데 어제 나는 힘든 외출 뒤 아픈 다리를 끌며 들어와 버렸지. 정말 우연히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조만간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제 돌아갈 날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벨롱장을 떠나는데 세화 해변에 큰 누렁이가 저렇게 앉아 있었다. 하염없이 바다를 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풍경을 즐기는 걸까? 털갈이를 하면서...

순대 차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백구들. 곧 백구가 네 마리로 늘었다.

오늘의 야옹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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