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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y 27. 2017

34일

드디어 자력 외출



괜찮았다. 일어나서 고양이들 밥을 주고 씻고 밥을 차리는 동안 어제보다 발목이 가뿐했다. 어젯밤 데인 상처가 너무 쓰라려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잤다. 정신은 피곤했지만 발목이 괜찮다면. 그래, 오늘은 가자.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순 없어. 3주가 넘었으면 충분히 쉬었잖아. 이제 내 힘으로 외출하는 거야. 유와 함께 해녀박물관을 목표로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가 유는 신발이 불편하다며 갈아신으러 돌아갔다. 나는 천천히 계속 걸어갔다. 내리막길에 이르자 보이는 한동리 바다. 이 얼마 만에 자력으로 보는 바다인가. 감격스러웠다. 15분. 걸어서 15분이 그렇게 힘들었다. 천천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저만치 언덕을 내려오는 유가 보였다. 빨리 걷는 사람이 부럽다. 새삼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강한 다리. 

한동안 우뭇가사리가 도로며 주차장이며를 점령하다가 이제는 마늘이다. 마늘을 쪼개서 여기저기 말리고 있었다. 밭에서 뽑은 다음 이렇게 말리는 거였어. 우뭇가사리는 비린내가 심했는데 마늘은 가까이 가도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해녀박물관은 세화리에 있다. 701 버스를 타고 해녀박물관 정류장에 내리면 되는데, 기사님이 구좌보건소에서 내리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같은 701 버스인데도 일부 구간을 두 길로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걷게 되었다. 천천히 걸어갔지만 벌써 15분 거리를 걸어왔고 내려서 또 한참을 걸으니 박물관에 도착할 즈음엔 발목이 시큰시큰했다. 일단 들어가서 표를 끊고 (어른 1100원) 상영관 시간을 기다렸다.  바로 전시 관람을 시작하기에는 발목이 너무 힘들었다. 

해녀와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는 상영관이 1층에 작게 마련돼 있다. 우리가 들어가려는 순서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단체로 함께 들어오셔서 사이에 끼어 앉았다. 다른 지역에서 관광을 오신 분들이겠거니 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제주 분들이셨다. 다 같이 나들이를 오셨나 보다. 해녀의 문화를 간략하게 소개해주는 영상이었는데, 어린 해녀가 나오자 할머니들이 "아이고 애기야~." 하셨다. 풍어를 기원하며 바다에 쌀을 던지는 의식을 치를 때는 "옳지!" 하며 추임새를 넣으셨고, 불턱이 나오니 "저기가 어디 바다니?" 하며 궁금해하셨다. 리액션 클라이맥스는 바닷속으로 들어간 해녀가 커다란 전복을 따는 순간에 터져 나왔다. "아이고 잘했다!" 하시며 할머니들은 하하 크게 웃고 박수까지 짝짝 치셨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 나도 따라 하하 웃었다.  

천천히 탈출 중
드디어 내 힘으로 본 바다. 저기 멀리 저기. 




전시장은 크지 않았지만 해녀의 고된 삶을 볼 수 있도록 알차게 구성해 놓았다. 귀엽고 산뜻한 옛날 잠수복부터 각종 물질 도구, 예전 도민증, 해녀조합원증, 해녀들이 작성하는 문서와 해녀들의 활동을 다룬 고문서와 신문기사 등 다양한 자료들도 있었다. 관람을 마치면 3층의 전망대로 갈 수 있는데 올라가서 깜짝 놀랐다. 유리창 가득 펼쳐진 세화 바다가 마을 풍경과 어울려 너무나 아름다웠다. 왜 다들 세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당장에라도 저 풍경 속에 뛰어들고 싶기도, 오래오래 이렇게 앉아서 보고 싶기도 했다. 

차를 마시러 갈까 하다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밥집을 찾았다. 춘희라는 돼지고기 요리 파는 곳을 찾았는데 가는 길에 그동안 많이 지나갔던 해물라면 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봤다. 제주 분이 하는 집인 것 같았다. 해물라면과 돈가스를 시켰는데 맛은 별로 없었지만 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이 있어서 창문으로 바다를 보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나와서 잠시 바다를 보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오는 길에는 한동초등학교 학생을 만났는데, 우리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해왔다.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어른에게도 인사를 해주다니. 서울 아이들은 어림없는데. 동네 어른들이 반은 친척뻘인 작은 사회라 그런 걸까. 3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씩씩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동리에 산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다고 했다. 헤어질 땐 우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린데도 몸이 다부져 보이고 똘망똘망한 느낌이 귀여웠다. 다음에 우연히 또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까? 

내일은 벨롱장이 저녁에 열린다고 한다. 내일도 외출할 수 있을까? 집에 오니 발목이 꽤 아파졌다. 서둘러 씻고 찜질을 했다. 어제 못 잔 잠도 보충해서 조금 더 잤다. 저녁에는 냉동실에 있던 국거리 고기로 미역국을 끓였다. 유가 맛있다며 잘 먹어주어서 좋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마당 한쪽에 있던 커다란 고무대야가 데구르르 굴어다닐 만큼. 집의 대문도 바람에 밀렸는지 활짝 열려 있었다. 바람을 헤치며 다니느라 겉도 속도 거칠어졌는데 따뜻한 국을 먹으니 덥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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