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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y 26. 2017

32일

이찌마루, 무늬, 일루트립



이제야 스케치를 조금씩 하고 있다. 말도 안 되게 그리고 있는 게 문제지만.  
내지 편집과 디자인을 한 책도 얼추 마무리 단계다. 두 번째 교정쇄를 의뢰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바람막이를 둘러 입고 고양이들 사료를 줬다. 비가 오는데도 아침부터 주변 고양이들이 많이들 모여 있었다. 다들 잘 먹고 나가서 잘 놀으렴. 

오늘 윗집 언니가 고성에 나간다셔서 따라나섰다. 딱히 고성에 볼일은 없지만 어디든 가고 싶으니까. 유는 도서관으로 따로 출발했다. 언니의 볼일이 끝난 뒤 성산플레이스의 우육면 가게에 갔는데 휴점이었다. 차선으로 월정리의 일본라면 가게에 갔다. 이찌마루라는 곳인데 작고 깔끔했다. 남성분이 혼자 일하고 계셨다. 제주에는 그렇게 혼자 일하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계산도 접객도 음식도 조금씩은 기다려야 하지만 어차피 바쁜 일 없으니 재촉하는 이도 없다. 재촉하고 싶다면 손 많은 곳에 가시면 될 일. 꺼멍라멘이라는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를 시켰는데 국물 한 숟가락을 먹고 "오!" 소리를 냈다. 깊으면서 깔끔하고 짭짤한 맛. 마늘을 여러 번 튀겨서 흑마늘 소스를 만들고 이를 돈코츠 육수와 섞어 맛을 낸다고 한다. 면은 보통, 숙주와 파채, 차슈도 좋았다. 배가 불러서 조금 남기고 나왔는데 계속 다시 생각났다. 우리 말고 한 테이블이 더 있었는데 유명 관광지인 월정리에 있는 가게 치고 한가한 느낌이었다. 장사가 훨씬 잘 될 만한데. 

배부르게 먹고 차를 마시러 간 곳은 무늬라는 카페다. 들어서면서부터 이곳의 빈티지력에 놀랐다. 그야말로 그릇부터 천 하나까지 모두 빈티지였고 배치 감각 또한 빈티지의 매력을 한껏 살렸다. 커피도 핸드드립과 모카포트를 이용해 만들어주었다. 친절한 여성분과 남성분이 함께 일하고 계셨다. 보통은 웨이팅이 있는 카페라는데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언니께 내가 만든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렸다. 워낙 우리에게 잘해주시니 뭐라도 더 드리고 싶은데 단출한 한 달 살림이다보니 드릴 것이 없다. 그래도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다. 








카페에서 나와 가까운 소품가게에 갔는데 갑자기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나무 냄새 풀 냄새가 진하게 났고 직접 만든 옷들과 동남아에서 수입해 온다는 라탄 소품들이 가득했다. 온갖 실도 구석구석에 쌓여 있었다. 실과 천도 판다고 한다. 얼마나 좋아해야 이런 가게를 차릴 수 있을까? 아주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만들고, 이를 판매하기까지. 그 일관된 취향의 집중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잘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이 가게 이름은 일루트립. 

돌아오는 길에는 요요무문에 들러 당근주스를 먹었다. 요요무문 자주 가니까 좋다. 발목도 차츰 나아가고 있으니 조만간 혼자서도 바다에 갈 수 있기를. 참, 오늘은 월정리에 있는 동안 안개가 짙게 끼어 바닷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쪽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동리로 돌아오니 그제야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바다는 보여도 안 보여도 좋다. 안개도 예쁘고 돌도 예쁘다. 그냥 좋다. 사실은 안 봐도 좋다. 내 앞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을 들면 거기에 바다가 있다는 게 좋다. 너무 바보 같은가. 


 





보통 부엌 창으로는 니은이가 와서 야옹거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비읍이가 왔다. 너도 드디어 애교 늘어나는 거야? 

내가 나오니까 다들 어슬렁어슬렁 나온다. 아는 척하면 슬금슬금 피하면서. 웃기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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