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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y 31. 2017

38일

시내 나들이




오늘은 시내에 나가볼까 하던 참이었다. 내가 발행한 책을 두 종 입고해 놓은 책방에 가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책을 입고할 때 내 동선을 기준으로 찾아가기 아주 힘들지 않은 책방에는 가급적 직접 들고 간다. 책방 운영자님과 인사도 나누고 혹시 책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책방 구경도 한다. 재입고를 하러 갈 때는 다른 책을 한 권 이상 사서 나오려고 노력한다. 내 책을 팔아주는 책방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다. 정말 사고 싶은 책이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참 미안한 마음이다. 왜냐하면 살 책을 찾기 위해 이미 오랫동안 책을 둘러본 뒤라 빈손으로 나오기가 참 민망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고 싶지 않은 책을 살 수는 없다. 방에는 더 이상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 있는 책도 정리해야 할 판이다. 이런 사정을 책방 분들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 뿐. 

외출해야 하니까 아침을 든든히 먹자 싶어서 식빵에 달걀 부침을 넣고 상추도 넣어 먹고 있는데 저번에 독립출판물 제작 상담 때문에 만났던 피티 강사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마침 시간이 나신다며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나도 이제 일정이 끝나가니까 지금 아니면 시간을 맞추기 힘들 것 같아 제안에 응했다. 세화의원 근처에 있는 쌀국수 집 'PO세화'에 가기로 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오일장 날은 쉰다는 공지가 적혀 있었다. 맞아, 어제 유가 다녀와서 알려준 것 같은데 그걸 잊고 있었네. 다음 식당으로 파스타를 파는 '그릉그릉'에 가려고 했더니 그곳 역시 휴무였다. 세 번째로 '달잠'이라는 식당에 갔다. 흑돼지덮밥과 문어덮밥을 파는 곳인데 문어덮밥은 품절이라고 했다. 실내에 자리가 없어서 포장으로 부탁해 마당의 파라솔 아래에서 먹었다. 맛집으로 알려졌는지 손님이 계속 들어왔다. 

달잠에는 까맣고 큰 개가 있었다. 이름은 챔프. 일곱 살. 아주 순하고 착했다. 피티 강사님과는 전부터 알던 사이여서 인사를 하고 친근하게 굴었다. 조금 있다가는 나에게도 와 몸을 붙이고 살갑게 굴었다. 밥을 먹는 내내 곁에서 한 점만 달라는 듯 혀를 내밀고 있었다. 미안, 너는 못 먹는 거야. 밥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제주 시내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701번을 타고 오현중고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10번 버스로 갈아탔다. 책방 라이킷은 동문로터리 정류장에 내려서 가야 한다. 드디어 라이킷을 찾아 들어갔다. 책방 계단 입구에 남자 아이가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나도 같이 웃고 인사를 했다. 라이킷 대표님도 웃으며 맞아주셨다. 책을 한참 둘러보았다. 사고 싶은 책이 두 권 있었는데 한 권은 양장본 그림책이라 크기도 크고 짐이 될 것 같아 내려놓았다. <제주 민담> 책을 샀다. 비싸지 않은 책이라 조금 미안했다. 책 값이 싸면 서점의 이익도 적다. 

다음으로 어딜 갈까 하다가 은행에 들어가 현금을 뽑고(현금을 다 써서 지갑에 천 원 한 장도 없었다) 미래책방으로 갔다. 미래책방은 관덕정 근처에 새로 생긴 작은 책방이다. 라이킷 대표님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고 알려주셨다. 미래책방은 수화식당 자리에 옛 흔적을 살린 채 들어서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었다. 책이 많지 않았는데 일부러 그렇게 유지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공간에 여유가 많았다. 책을 보기에도 공간을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진한 먹으로 새와 수국을 그려 넣은 엽서를 샀다. 그 엽서를 만든 곳이 한동리에 있다고 했다. 나도 한동리에 있다고 하니 미래책방 대표님이 반색하셨다. 위치를 알려주시며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조만간 가야지. 

미래책방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 골목 시장과 동문 시장을 통과해 정류장으로 갔다. 시장 구경도 하고 중간에 문어빵도 사먹었다. 문어빵은 즉석에서 구워내는 문어 모양의 보리빵인데 문어 머리 부분에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가 있다. 문어도 들어 있긴 한데 내 새끼손톱 반절만 한 것이 한두 개 씹혔다. 돌아오는 버스는 드물게 만원이었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꽤 많이 탔다. 여행자들은 제주에 여유를 찾아오지만 너희는 여기서 치열하겠구나 싶었다.  

갔던 길 그대로 다시 갈아타면 되는 줄 알았더니 지도 어플이 알려준 환승 정류장은 다른 곳이었다. 이번에는 해양연구소 정류장에서 갈아탔다. 오늘은 바다를 못 보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해안 가까이 달려서 멀리 바다가 보였다. 집 사이 사이, 골목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 하늘과 이어진 듯 사진에는 잘 찍히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이는 바다. 라식 수술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고마운 701버스. 

내릴 때는 보통 타는 곳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그쪽에는 최근에 생긴 편의점이 있어서 유에게 전화해 뭔가를 사갈까 물어봤다. 유는 마침 근처 해변에 있다며 이쪽으로 온다고 했다. 같이 우유, 딸기잼, 커피, 달걀을 사서 돌아왔다. 날달걀까지는 기대 안 했는데 있어서 반가웠다. 마트에 가는 것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야 하니까 필수품을 살 수 있을 때 사야 한다. 같이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노을을 보았다. 고양이들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곱등이 새끼들이 또 여러 마리 나와 있었다. 이 집 욕실이 무슨 마을 회관이니 매일 그렇게 모여 있고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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