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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룸메와 나

그것만은 안 돼

by 윤준가


우리 엄마와 아빠의 관계에서 내가 못마땅해 하는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빠의 발톱, 각질, 귀지를 늘 항상 엄마가 정리해 준다는 사실이다.

"아빠는 손이 없어?"

"혼자서는 못 해? 왜 그걸 맨날 엄마가 해줘?"

나름대로 의문도 제기해 봤지만 두 분은 허허 웃고 지나갈뿐.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런데 같이 살다 보니 어느새 내가 룸메의 귀지를 파주고 있다!

룸메는 얼굴이 큰 만큼 귓구멍도 크다. 다이소에서 산, 끝에 불이 들어오는 귀이개를 들고 그의 귓구멍 속을 들여다 본다. 어느 날은 큰 귀지가 있고 어느 날은 작은 부스러기만 있다. 눈에 보이는 귀지들을 잘 파내고(너무 깊이 있는 것들을 욕심 내서 파내지 않도록 유의한다.) 면봉으로 슥슥 닦아 마무리한다.


룸메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하고, 나는 귀찮은 척하지만 사실 나도 좋다. 무엇보다 룸메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세계 3대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코 피지 짜기 영상, 여드름 짜기 영상 다음에 아마 귀지 파기가 있을 것이다. 더럽지만 후련해...


어젯밤 꿈에서는 다른 상황은 기억이 안 나고, 내가 엄마 귀지를 파게 되었다. 엄마가 내 무릎에 누우시며, "귀지 좀 파줘."라고 해서 귀지를 파려던 참에 잠에서 깬 것 같다. 깨자마자 여느 때처럼 룸메에게 꿈 얘기를 했다.



나 : 꿈에서 누가 나한테 귀지를 파달라고 했어.

(누구인지는 말 안 함.)


룸메 : 뭐? 그건 안 돼!

귀지만은 안 돼!

다른 건 다 해도 귀지는 나만 파줘! 그건 내꺼야!!




룸메의 귀지 사랑이 이 정도였다니.

오늘 밤엔 오랜만에 귀지 파티를 열어야겠다.





*과한 귀지 제거는 귀 건강에 나쁩니다. 의사들은 못 하게 하는 거니까 모두들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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