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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룸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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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an 28. 2020

용서해 (짝) 용서해 (짝)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룸메. 앨범 디자인 고민을 하더니 내 작업실로 와서 두리번거렸다. 내가 만든 이미지들 중에 음악과 어울리는 것이 있는지 찾고 싶단다.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누드 드로잉 중 한 컷, 마블링 중 두 컷을 골랐다. 그중에서도 누드 드로잉을 좋아해서 - 웅크리고 있는 남자 모델을 그린 것 - 그 그림으로 디자인에 들어갔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대로 배치도 요리조리 해주고, 크기도 변경해주고, 그림을 누끼 따서 배경도 깔아주고... 이렇게 저렇게 베리에이션하며 보여주었다. 그렇게 천천히 하기를 며칠. 


드디어 세 가지 시안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남아서 그 세 장을 PDF로 변환해 룸메의 메신저로 보내주었다. 그러고 씻으러 들어가려는데, 룸메가 하는 말. 


룸메 : 근데 이 사각형 너무 대충 올린 거 아냐? 

나 : 당연히 지금은 대충 하지. 디자인이 결정되어야 제대로 만질 거 아냐. 

룸메 : 흠... 너 이거 만들어 준다고 좀 생색내는 것 같다...? 


그러고 씻으러 갔는데 화장실에서 혼자 생각해 보니 점점 화가 나는 거다. 

그래서 뛰쳐나와 다시 말했다. 


나 : 너 아까 그 말 농담이야, 진심이야? 

룸메 : 조금은... 진심?

나 : 허... 야, 너는 데모 보낼 때 마스터까지 해서 보내냐? 아니잖아. 비슷한 거라고. 

룸메 : 마스터까지는 아니지만 데모도 굉장히 공 들여서 보내! 

나 : 나는 니가 피곤해 할 때도 이거 하자고 컴퓨터 켜놓고 기다렸고, 니가 말도 안 했는데 추가로 스캔해서 이미지 만들어주고, 새로운 것도 잡아줬어. 이 작업에 너보다 내가 더 시간을 많이 들였어. 근데 뭐, 생색? 

너 두고 봐. 너! 두고 봐!!!! 


마저 씻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침 내가 참여하는 매거진에 들어갈 리뷰 한 개를 룸메에게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그는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나 : 내일까지 그 리뷰 작성해주면 아까 일 용서해줄게. 

룸메 : 뭐?!! 지금 용서해! 지금 용서하라구!!

나 : 리뷰 쓰라고!! 

룸메 : 용서해! (짝) 용서해!! (짝) 

나 : 약속하면 용서해줄게! 


결국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나는 지금 용서하고 룸메는 내일까지 리뷰를 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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