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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가 Jan 30. 2022

스물여덟, 창업했습니다(2)

암 온 더 NEXT LOCAL

이중생활이 지속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사이 솜은 자신에게 사업을 위해 주는 6개월의 시간을 갖고 싶다며 퇴사를 했다. 본격적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께 좀 더 해보자고 다짐했다.

우리의 다짐 장소 - 동대문 성곽길


떨어진 이유를 알면 다음에 붙을 수 있으니까! 예비창업 패키지에서 발표했던 내용들을 조금 더 보완해 솜의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당신들이 고객이라면 이 제품을 쓸 것 같은지, 혹은 지원 담당자의 눈에서 이게 어떤 점들이 더 드러나면 좋겠는지 피드백을 받았다.


어느 날 피드백 자리에 있던 솜의 친구 중 한 명에게 연락이 왔다. "NEXT LOCAL"이란 게 있는데, 너네가 말한 사업모델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한번 써보는 게 어때?


넥스트 로컬은 지역의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내 보자는 미션에서 출발한 지원사업이었다. 넥스트 로컬 심사에 통과하면 직접 지역으로 내려가 조사하고, 지역자원 조사를 통해 도출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마침 우리가 찾던 배 낙과가 있는 '나주'도 조사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뭐야, 안쓸 이유가 없잖아! 그렇게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창업자금 지원이 아니라 진짜로 지역에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원료까지 발굴할 수 있다니.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사업이었다.


1차 서류에 통과하면 지역자원 조사기간 동안 나주에 방문하고 활동을 해야 한다기에 이번에는 팀이 아닌 솜만 지원하는 것으로 했다. 나는 아직까지 입사 5개월 차라 퇴사를 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미래를 보았을 때 퇴직금 받고 조금 더 버티기 좋은 상황에서 퇴사를 하고 싶었다. 아직 사회 극 초년생이라 모아둔 돈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향후 우리가 진짜 월급 없이 버텨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생활이 힘들어서 사업에 대한 애정이 식고 싶지 않았다.


1차 서류심사에 통과했고, 여름 내내 비가 오던 2020년 7월~8월 솜은 나주에서 원료를, 나는 서울에서 제품 형태를 고민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회의를 했다.


지역조사가 시작되고 이주 후, 안타깝게도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아이템은 산업화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메인 원료의 생산 공장 이슈였다. 이대로 접을 수밖에 없는 걸까. 전전긍긍하던 몇 주가 지나고 솜이 입을 뗐다.


네가 저번에 준 샴푸바 있잖아
우리 그걸로 시작하면 될 것 같아.



낙과를 활용한 원료를 사용할 수 없게 된 대신, 솜은 나주에서 쪽이라는 것을 찾았단다. 예로부터 피부 진정을 위해 쓰였다는 쪽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주를 대표하는 작물 중 하나라고. 쪽을 대중화하기 위해 2012년 샴푸 등 제품도 제작해 보았지만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걸 샴푸바로 만들면 어떨까. 드디어 지역의 니즈와 우리의 아이디어가 교차하는 지점을 찾게 되었다.


샴푸바? 좋지. 플라스틱을 아예 안 쓰는 거니까 낙과를 업사이클하는 것만큼 환경 임팩트가 있잖아! 또 샴푸는 매일 쓰니까 우리가 말하는 더 명확한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있겠네. 쪽을 넣는다는 것도 신선하고.
너무 좋다! 또 한 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 정도면 부정맥일 수도 있겠다...


피보팅 된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발표를 했다. 될 것 같았다. 기뻐하는 마음도 잠시,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1차 사업화 기간에 통과하면 약 4개월 동안 실제 사업을 운영해서 결과를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속도가 중요했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중생활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3달만 이중생활을 버티고 퇴직금 받고 나오느냐, 눈앞의 돈을 포기하고 일단 뛰어들어보느냐.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대기업 욕심 버리고 연구원 일찍 올걸..ㅠ 후회하기는 늦었다.


이때 솜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거 붙으면 내가 조금이지만 그래도 2월까지 급여 줄 수 있어. 우리 자금 붙으면 직원 고용할 수 있으니까. 같이하자고 퇴사하게 만드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한번 차분히 고민해봐.


왈칵. 고민이 끝났다. 최소생계비가 그래도 6개월이나 보장되어 있는데, 길게 고민할 것이 없었다. 2차 사업화 자금도 따면 되니까. 아니, 지금 나와야 2차 사업화 자금도 딸 수 있으니까! 사업화 자금 따서 실제 매출로 연결지으면 되니까!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조금은 무모할 지라도 해야 결과가 나오니까.




1차 사업화 기간에 통과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다음날 박사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이번 과제 기간까지만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사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그렇게 스물여덟 살의 10월, 나는 회사를 1년도 다니지 못한 채로 퇴사했다. 설렘과 두려운 마음이 공존했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겠지? 나는 잘할 수 있어!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마음속으로만 해보고 싶어만 했던 것들을 직접 할 수 있을 테니까.

퇴사하고 떠난 워크숍

여담 -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주변 사람들의 말들

1. 회사 관둘 수도 있어라고 말할 때는 그래도 회사가 낫지라고 하던 할머니가 막상 회사를 관뒀다고 하니까 그래 네가 살면서 사업 정돈해봐야지 했다.

2. 그럴 줄 알았다던 할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고 내 생활에 관심이 많아졌다. 사업은 확장할 때 망할 수 있으니(본인의 경험담) 확장은 신중히 결정하라고 했다.

3. 예비창업패키지 떨어지기 전 김칫국 마시며 나 사업 진짜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 이런 점이 있고 사업은 이런 점이 있어 설명하니 욘이 말했다. 회사 계속 다닐 생각 없는 거 아니었어? 사업 얘기할 때 너무 즐거워 보이는데. 핀란드와 서도 계속 일할 수 있고 좋네

4. 일 요새 안 벌린다 했더니 뒤에서 야금야금 준비하고 그냥 냅다 나간 거야? 너답다. - 친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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