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란드 로드트립 여행기(1)
조금만 가다 보면 북극권을 만날 수 있는 혹한의 지역, 핀란드 라플란드에 New Year 트립을 다녀왔다. 출발 한 달 전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느냐, 기차를 타고 가느냐 고민하던 차, 갑자기 욘이 로드트립으로 변경을 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운전 괜찮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상관없다길래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좋아~라고 답했다. 눈 덮인 숲과 호수를 보며 북쪽으로 간다니 너무 낭만적이잖아!
기껏해야 8시간 정도 가겠지 생각하고 덥석 물어버린 그때의 나...
실제로 11시간 남짓 걸린 운전 끝에 나와 욘 모두 다리를 절며 숙소에 도착했다.
장거리 운전에는 충분한 휴식을..
도심에서 3박을 하며 도시 구경, 산타마을 구경, 루돌프 썰매를 타고, 2박은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골 코티지에서 보내기로 했다. 새해에는 조금 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에서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로라는 조명이 없는 곳일수록 더 잘 보인다! 욘은 나름 핀란드인이라 오로라를 본적이 꽤 있다는데 나는 한 번도 없으니까. 이번 트립에서 꼭 볼 수 있기를!!
새벽 6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7시에는 출발을 해야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고 여정을 시작했다. 엄마가 주신 초콜릿과 젤리, 클레멘타인을 까먹으며 달리는 차에 몸을 맡겼다.
출발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서서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무 위로 쌓여있는 눈의 두께가 달라졌다. 평소 탐페레에서 보던 눈과 나무의 비율이 3:7이라면, 라플란드의 눈과 나무의 비율은 9:1 수준이랄까.. 잎이 아예 없어서 하얗게 얼어버린 나무들도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모형 중 하얀 나무는 그냥 색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렇게 생긴 나무가 있을 줄이야. 올라갈수록 도로가 보이는 비율도 줄었다. 진정한 윈터 원더랜드였다.
나름 로드트립이니까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 마을을 통과하는 코스로 짰다. 운전한 지 5시간쯤 지났을까, 몇몇 사람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타인이었다.
길을 지나다 보면 붉은 나무 빛이 색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핀란드의 올드하우스들을 만날 수 있다. 어렸을 때 집을 그리라고 하면 그리는 세모 지붕에 네모 몸통을 가진 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나무집들도 색이 달랐다.
나중에 우리의 섬머 코티지는 어떤 색으로 칠할까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 숲의 경관을 너무 해치지는 않으면서 적당히 유니크한 색. 확실한 불호는 있었다. 욘은 핑크, 블랙, 그레이는 싫다고 했다. 앗,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들인데... 가끔 안 맞네 우리..
도착할 때쯤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둡고, 가로등도 별로 없고, 다른 차 하나 없이 좁은 골목길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내가 영화에서 이런 도로에서 많이 살인사건 나는 거 봤다고 하니까 욘이 그건 미국 영화라 그렇다고 했다.
이런저런 수다 끝에 드디어 로바니에미에 도착했다. 로바니에미는 라플란드의 주도로 산타의 고향과 순록이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인구 규모는 6만으로 작은 도시지만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이나 되는 만큼 활발하다. 라플란드 내 사미 원주민이 18만명, 순록 개체수는 20만 마리로 사람보다 순록이 많이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로바니에미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놀란 것은 역시나 눈이었다. 도로 중간중간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훗날 이 산더미 눈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됩니다.). 로바니에미의 해는 탐페레보다도 2시간이나 짧아서 10시 반에 해가 뜬 후 2시 반에 진다. 밤이 길어 그런지 조명 장식도 화려한 편이다. 살면서 본 트리 중 가장 컸던 것 같다.
장시간 운전으로 굶주린 배를 안고 음식을 사 왔다. 순록과 함께 사는 라플란드 지방의 대표 음식 "poronkäristys(포론카리스티스, Sautèed reindeer)". 스모키 하게 구운 순록 고기에 으깬 감자와 링곤베리를 곁들여먹는다. 핀란드-스웨덴의 육고기 음식에는 링곤베리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순대와 유사한 핀란드의 블랙 소시지(Musta Makara)도 링곤베리 잼을 함께 준다. 링곤베리의 새콤하고 씁쓸한 끝맛이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나는 링곤베리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음료도 링곤베리&로즈메리를 사 왔다.
로즈메리 특유의 향이 운전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맛이다.
오랜 운전으로 속이 불편했는데 이 주스가 아주 도움이 되었다.
보드카에 섞어먹어도 맛있다. 나중에 핀란드에 가면 꼭 드셔 보시길! sale에서 판다.
도착하기 무섭게 피곤이 몰려왔다. 본 투 비 레이서인 욘은 한 시간만 더 가고 쉬자는 7시간 동안 뱉었다. 결과적으로 11시간 운전에 30분만 쉬었다. 너무 했다. 그래도 나를 죽이지 않고 데리고 와 줘서 고마웠다. 다음부터는 중간중간 잘 쉬고 오자고 했다. 보드카를 한잔 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남은 5일 내내 앓을 수 있으므로 둘 다 빠르게 잠을 청했다. 술은 안 마셨지만 해장을 해야 할 것 같던 날이었다.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