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가족과 맞는 크리스마스

by 준가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침, 탐페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라비아로 향했다. 라비아는 굉장히 작은 시골마을로 욘이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란 곳이다. 나무, 호수, 나무를 몇 번 거쳐 길을 가다 보면 아주 작은 길목에 "Vihakarantie"라는 그의 성을 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길로 가면 비하카라네 가족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 이 표지판을 보고 오만 주접을 다 떨었다.
혹시 지주... 시냐고.. 혹시 귀족... 이시냐고... Lord Vihakara가 아니시냐고..


그저 땅은 넓고 사람은 적게 살아 사람마다 각자의 공간이 넓고, 그 지역에서 대대로 오래 살아 표지판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비하카라띠에를 지나면 곧바로 집이 보인다. 겨울이 길고 짙은 핀란드에는 조명들로 집 외부를 장식하곤 한다. 잎에 쌓인 눈들이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은 숲도 색색의 조명들로 조금은 포근하고 따뜻해 보인다.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크리스마스 포리지를 먹었다. 포리지는 쌀이나 귀리 등 곡식을 우유와 함께 끓여낸 음식으로 베리나 달달한 과일 수프 등을 곁들여먹는다. 우유죽과 맛이 비슷한데 곡식의 찰기가 조금 더 없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 포리지는 주로 쌀로 만들고, 평소 먹는 오트 포리지보다는 조금 더 고소하고 느끼한 맛이 난다. 핀란드의 음식은 단맛과 기름진 맛이 주로 느껴진다. 맛있는 줄 알고 크게 집어 한입 먹으면 실망하는데, 그래도 항상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그러나 다 먹을 자신은 없으므로 아주 소량만 덜어먹었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려는 낌새가 보였다. 서둘러 점심을 먹은 후 남은 해가 다 기 전에 산책을 나갔다. 해가 살짝 저물어져 갈 때 걷는 눈길은 동화 속 한 장면 같이 예쁘다. 여기에 해가 뜨는 시간이 짧으니 찰나의 순간이라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매일매일 볼 수 있는 해지만 금방 사라져 낮 시간이 소중해진다.

평화로운 산책길


산책을 마친 후, 따뜻해진 사우나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건조하고 뜨끈한 공기에 푹 안겨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천국이 따로 없다. 미지근한 맥주가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 있다면 바로 사우나가 아닐까. 가끔 사우나 열기를 깜빡하고 입을 대고 마시다가 입술을 데일 때도 있다.

이것이 핀란드식 사우나
자일리톨 나뭇잎 말린 것을 물에 담가 둔 후 사우나 마지막에 사용한다.


어쩌면 욘보다 더 보고 싶었던 우리 고양이랑 쉴 새 없이 놀았다. 여름에는 집을 나가 3주 정도 여행을 하고 오는 미우꾸(Miuku)는 추운 걸 싫어해서 겨울에는 집에만 있는다. 사우나를 한 날에는 따뜻해진 사우나에서 자거나, 가끔은 내 다리에 붙어서 잔다.

귀여워...

산타를 맞이하기 전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메뉴는 전통 크리스마스 음식인 크리스마스 햄과 감자파이. 엄마가 새벽 3시에 일어나 크리스마스 햄을 만드셨다고 한다. 햄이 커서 이걸 어떻게 다 먹지라고 생각했는데 욘은 걱정하지 말라며 이걸 3일 내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어? 그렇구나... 저녁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음식은 아니었다.
결국 이 햄은 탐페레로 돌아가는 날인 27일까지 먹었다.




저녁을 먹고 조금 쉬고 있으니 선물을 전해주려 산타가 왔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기 전까지 온 가족들은 선물하고 싶은 상대의 이름을 적어 선물을 보내고, 그것을 산타가 한 번에 수거하여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매년 산타 역할은 욘의 몫인데, 저녁을 먹고 잠이 들어서 잠이 덜 깬 상태로 산타를 맞이하여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다. 산타가 걔 지금 여기 없다고 했다. 그렇다 그는 지금 완벽한 메소드 산타였다.
갑자기 만나버린 산타 선생님


선물 꾸러미가 하나씩 열리고 이름이 돌아가면서 호명되었다.


라우릴레! 시니깔레! 요닐레! 융알레!


너무너무 귀여운 선물들을 한가득 받았다.

미우꾸도 선물을 받았다!

모두가 신나는 얼굴을 하고 각자의 선물을 뜯어본다. 당신이 생각나서 샀다는, 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선물이 있고,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채 날짜를 세고 기다리면 산타가 그 마음을 대신 전해준다. 포근하고 따뜻하다. 욘이 예전부터 얘기하던 핀란드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은 이런 분위기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나 보다.

선물들

산타와의 기념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욘이 돌아왔다. 매년 산타를 못 보는 그.. 나는 봤는데..

각자의 선물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꽃을 피웠다. 평화롭고 수다스러운 크리스마스이브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사우나 세트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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