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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가 Oct 20. 2022

우아한 분노법

오랜만에 해방촌에 갔다. 30분만 더 놀다 가자고 말하는 숙에게, 지난 그녀의 생일 파티 때 도망갔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일어 알겠다고 했다. 평소라면 한껏 맥주를 마시다가 숙이 취할 때쯤 '이제 가야 해' 하며 뿌리쳐 나왔을 날이지만, 연휴를 앞두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자유로운 기분들을 뒤로하고 집에 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만 연휴 첫날부터 인사불성이 되기는 싫어 약속의 10시 30분이 지나면 집에 오겠다고 선언을 했다. 숙과 그녀의 해방촌 구들이 권하는 샷을 하나 둘 마시면 항상 골로 가기 때문에, 샷 먹지 말고 오는 샷도 막아달라는 무언의 압박까지 더했다. 여기서 한번 더 취하면 나 이제 안 올 거라고. 그렇다면 와인을 쏘겠다며 그녀는 80's song 오픈 마이크 나잇이 진행 중인 한 바에 데려갔다. 여기 온 이상 숙이 나를 가만둘 리 없었다. 


- 노래 하나만 해줘, 저번에 생일 때 안 불러줬잖아ㅠㅠ


- 그래 뭐 어렵다고. 근데 나 80년대 노래는 몰라


- 그냥 옛날 노래면 된대. 너 뭐 아무거나 아는 거 없어? 알려줘 봐 이름 적고 오게.


오픈 마이크는 시작되었고, 첫 번째에 이름을 넣어준 덕에 나는 바로 올라가 노래를 시작했다. 떼창의 문화가 살아있는 해방촌 사람들에게 힘입어 모르는 부분은 적당히 넘겨가며. 무대라고 할 것도 없이 캐주얼한 공간에서 내려오니 환호가 터졌고, 오랜만에 노래를 하니 짜릿함이 올라오는 게 상당히 신이 났다. 약속의 10시 반이 얼마 안 남은 시각, 막차는 아직 1시간이 남았고 한곡만 더하고 가면 안 되냐는 숙의 말에 다시 한번 알겠다며 스스로 한 선언을 깼다. 


'해방촌이란.. 원래 그런 곳이니까.' 하고 남아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진행자가 바뀌더니 웬 이상한 놈이 하나 왔다. 처음에는 나를 불러 올라가니 니 차례가 아니라며 꺼지라고 하질 않나, 정말로 내 차례가 되어 올라가니 이번에는 내 신발을 가지고 넘어졌다. '너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고. 그렇게 높은 신발을 신으면 너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이곳에서는 저 신발로 노래할 수 없다고'. 


엥. 아깐 잘만 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무 말도 안 하던 놈이 나에게만 왜 이러지. 


'여기는 한 명 잡아서 찐따 만드는 경향이 좀 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그냥 내려갈까 고민하던 순간, 내가 왜 그래 야하지 하는 짜증 섞인 마음이 쓱 올라왔다. 일단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고, '이런 게 해방촌 문화야'라는 것을 등에 업고 무례한 행위를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바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대로 내려갔다가는 찐따라고 인정해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 무엇보다 나에게 시비를 터는 사회자는 너무 한국인처럼 보였고, 나는 외색 우월문화가 남아있는 이 곳에서 같은 한국인이 만들어내는 조롱받이 동양인 제물이 되기 싫었다. 


'그냥 음악 틀어'


툭 툭 앞으로 신발을 차 벗어버리고 노래를 했다. 너네가 이런들 내가 쫄 것 같니. 마침 선곡도 잘했네, DANCE MONKEY. 음악이 나오자 조롱의 분위기는 환호로 바뀌었고 에너지 넘치는 3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노래가 끝나도 화가 가시지 않았았던 나는 기어코 진행자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고 나서야 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곤 반 잔 정도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비우고 자리를 떴다. 후련하고 통쾌했다. 




그러나 다음날,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취해서였는지 화나서였는지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해버리고 돌아온 것 같았다. 굳이 내가 화를 내며 저들과 똑같은 방법을 써야 했을까. 스스로를 좀먹는 짓을 한 것 같았다. 내 안의 평화 비둘기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이지!


생각해보면 평화를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호구 같은 나지만 차별적 발언을 하는 것에는 유독 참지 않기도 했다. 이걸 웃어주며 넘기는 순간 저들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혹은 본인이 더 세다고 생각할 것 같은 괜한 걱정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그저 상황을 넘어가기만 했더니 뭐 하나 나아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무례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저들이 알아먹기 편하도록. 저들의 방식대로 나의 분노를 표출하곤 했다. 하지만 분노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분노의 건수가 늘어나면서 혼란의 건수도 같이 늘어난 것이 문제였다. 호구와 분노 퀸 사이에 간극은 커도 너무 컸다. 


아마도 나는 그날 화를 내지 않고 내려왔더라도 후회를 했을 것이다. 화를 내도 못 알아먹을 것 같다는 회피적인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자고.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내 안의 분노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떤 행위를 하던 항상 후회는 생겼다. 이제는 어떤 것이 후회가 더 적을지를 판단할 때. 조금 더 우아하고 쿨하게 화를 낼 수 있는 방법. 더 후회가 적을 방법. 더 후련할 방법은 무엇일까. 우아한 분노법은 정말로 있는걸까.


문제의 와인과 문제의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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