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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가 Nov 13. 2022

가을엔 채소찜

10월 어느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지고 걷다보면 물씬 겨울공기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여름 햇빛을 충분히 받은 채소들의 다채로운 맛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때. 은은하고 달큰한 홍시와 무화과로 올해의 남은 날들을 가늠할 수 있을 때. 상큼한 맛 보다는 조금 더 뭉근하고 따뜻한 맛이 생각나는 때. 생 채소를 먹기에는 춥지만 그렇다고 스프를 끓여 먹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때, 씹는 맛이 매력적인 채소찜을 해보았다.


찜에 사용되는 채소들은 꽤 단출하다. 쫄깃한 식감을 책임져 줄 버섯 두가지과 씹을수록 단맛을 내는 애호박. 찜요리에는 빠질 수 없는 알배추, 그리고 호불호는 강하지만 나에게는 극 호인 가지까지. 길쭉한 재료들을 모아두고 일정한 크기로 잘라준다. 이때 크기들은 조금 큰게 좋다. 찜을 찌고나면 크기가 작아지기도 하고, 뜨겁게 쪄진 채소들을 하나씩 쏙쏙 골라 입에 넣은 후 씹다보면 채소들의 식감과 향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숭덩숭덩. 채소를 썰어두고는 큰 냄비를 하나 준비한다. 다진 마늘이 들어간 올리브유도 챙겼다. 본격적으로 찜을 하기 전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채소를 볶아주면 찜의 풍미가 더욱 올라간다. 두명이니까 새송이 두개, 가지도 두개, 호박은 한개, 알배추도 한 통. 이상한 계산을 마치고 나니 어느 새 솥 하나를 훌쩍 넘는 양의 채소 덩이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어짜피 채손데 다 먹지뭐 라는 생각과 함께 솥에 올리브유를 둘렀다.


팬이 달구어지고 채소덩이들은 저마다의 향을 내뿜으며 익어간다. 올리브유에 들어가있는 마늘조각도 제 역할이 있다며 한껏 존재감을 내뿜는다. 마치 비오고난 후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향을 닮았다. 살짝 볶은 채소 사이로 물기가 보이면 뚜껑을 덮을 차례. 이제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맛을 기다리면 된다. 어느정도 익었다 싶으면 뚜껑을 살짝 열어 소금과 후추를 더해준다. 


"Dinner is ready"


채소찜은 처음 먹어본다는 욘의 말에 나도 이건 처음해본다고 했다. 살짝 의심섞인 눈초리가 따가웠다. 그래도 맛있을 거야. 잘 굽기만해도 맛있는 채소에 기름까지 둘렀으니까 아마도 더 깊은 맛이 날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초간장도 준비했는걸. 


'뜨거우니까 조심해' 

'맛있게 먹어'


애정섞인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욘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내 입가에는 예상된 맛이 고스란히 느껴져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김서린 채소를 후후 불어 간장에 콕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알배추는 여러개를 듬뿍 떠서 와앙 먹는 맛이 있었고, 뽀득뽀득한 가지를 먹고나면 달큰한 애호박을 먹고싶었다. 중간 중간 쫄깃한 버섯을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큰 솥에 넘치게 들어가던 채소는 반으로 줄어들고, 곧 바닥을 보였다. 본투비 미트러버인 욘은 핀란드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맨날 먹을 수 있겠다며 자기도 다음에 요리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재료들의 맛으로만 만들어낸 요리는 투박하고도 진솔한 맛이 있다. 꾸미지 않아 더 자주 찾게될 채소찜. 이번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채소찜을 해먹어야겠다. 채소를 바꾸면 또 맛은 변하니까. 언제는 토마토를 넣어보고 초간장이 물리는 날에는 스리라차를 더해보기도 하면서.


속도 편하고 잠도 잘와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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