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연이는 1학년 교실에서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불렀다.
'너 진짜 건강해보인다. 건강미인 같아'
연이는 여리여리하고 마른 친구였다.
나는 정말 오래토록 '마른몸'을 원했다. 몸선이 가늘고 하늘하늘한. 어떤 옷을 입어도 구애받지 않을 여리여리한 몸매. 마른몸은 내 평생의 숙제같았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적을 수 있는 문자에는 168cm/48kg 로 적혀있었다. 그 키에 저 체중이 되려면 뼈부터 말라야한다는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굶어도 보고, 옷을 잔뜩 껴입고 계단을 올라보고, 랩으로 다리를 칭칭 감아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여리여리한 연이가 아니고 168kg/48kg도 아니고 165/56kg인 건강미인 준가였다.
나는 왜그렇게 마른몸에 집착했을까. 나에게 마른 몸은 다양한 텍스트의 상징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나오는 주연들은 모두 말랐고, 조연들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돌은 또 어떻고. 조금만 살이쪄도 그 몸을 빼야한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살이 쪘다는것은 관리를 안했다는 말과 동일시되었다.
오랜 운동을 관두고 13kg가 훅쪄버린 시기가 있었다. 한참 타인에 시선에 민감하던 사춘기 14살. 나는 주변에서 놀려도 되는 수준의 약간 통통한 아이가 되었다. 너도 은근 가슴 크다라는 말들은 수치스럽게 들렸다. 날씬하고 예쁜애가 아니라는 이유로 느껴지는 은근한 멸시. 1년 뒤 8kg가 훅 빠지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나를 좋아한다는 친구들도 하나 둘 생겼다. 내안에는 '뚱뚱하면 안된다'라는 강박이 새겨졌다.
'너 살 좀 빠진 것 같다'며 건네는 칭찬 섞인 안부. 반대로 '살쪘네' 라는 말도 자연스러운 흘러나오는, 타인에 몸에 대한 품평이 계속되는 일상이었다. 여기에 종종 들어온 '너는 기가 좀 센 것 같아' 라는 말에 은근히 섞인 내 여성성에 대한 부정과 나를 연애대상에서 제외한 남자사람친구들의 거침없는 품평들은 마치 ‘마른 몸'이어야만이 여자사람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인양 보였다. 보이지 않는 보라색 등급 도장이 내 몸에 쿡 찍혀있는 것 같았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건강미인 몸.
나는 더 말라야만 했다.
누군가 괜찮은데 살을 왜 빼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런스타일로 입는걸 좋아하는데 말라야 예뻐'
'난 뼈대가 있어서 살찌면 너무 부해보여'
자기관리와 패션이라는 변명안에 안에 쏙 숨어 타인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럴싸하게. 아주 합리적인 것 처럼.
언젠가는 내 등급도장이 '상' 으로 바뀌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