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지친 퇴근길이었어요. 집에 무척이나 가고 싶었지만 약속이 있어 아주 오래간 만에 7호선을 탔습니다. 힘들어 죽겠는데 앉지도 못하고 서서 책을 읽다 고개를 잠깐 들었는데, 잊고 있던 '화려한 한강 야경'이 제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오랜만에 스치듯 지나간 한강 야경은 홍콩 침사추이에서 보는 장면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습니다. 허구 한 날 '직장인들의 지옥' 이라고 불리는 '9호선'에서 콩나물처럼 다니다가, 이렇게나 화려한 야경을 보며 지나가니, 조금 쌩뚱 맞지만 갑자기 여러가지 감사하는 마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와 감사하다.
퇴근길에 이렇게 예쁜 야경을 볼 수 있어서..
이런 멋진 도시에 살 수 있어서,
이런 멋진 도시에
또 좋은 직장에서 일 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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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잘 살아야겠다.
계속 계속 멋있게 그리고 멋지게.
잘 살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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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취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도시와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영화나 TV CF 에서 보면, 이런 화려한 도시, 뉴욕이나 싱가포르, 홍콩에서 바삐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 멋있게 표현 되잖아요. 사실, 저도 그런 이미지들에 반해서 바삐 일하는 방송국이나 광고회사 같은 곳을 꿈꿨던 것 같아요.
예전 싱가포르에 갔을 때 마리나베이샌즈 가까이 있는 화려한 금융빌딩 들을 봤어요. "도대체 이런 건물들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할까?" 라며 부러워하고 감탄했지요. 또 누가 홍콩에서 일한다고 하면, 또 그렇게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요, 서울은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메가시티고, 저 또한 서울 중에서도 젤 화려하다는 강남 한복판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꿈꾸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퇴사를 해야 하고, 빨리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고, 또 빨리 회사 안다니면서 경제적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이 도시는 헬조선이고,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노동자' , '기껏해야 월급쟁이' 라며,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화려한 도시와 광고회사를 다니는 저의 모습이 제가 20대 때,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꿈꾸며 상상했던 저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홀랑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지하철에서 한강 야경보고 이런 생각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조금 낮 간지럽지만, 30대인 지금 제가 꿈꾸는 또다른 멋진 미래가 있듯, 지금 저의 모습은 제가 영화에서 봤던, 제가 20대 때 그토록 바랬던 그곳 임을. 잊지말고 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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