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악의 탄생> (Hitler, The rise of evil) 미국 CBS 드라마, 2003
탄생? 이것은 탄생을 이야기하는가? 분명 원제는 Birth 가 아니라 Rise다.
악은 탄생을 통해 나타나는 것인가?
그렇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문을 걸어 잠그고, 10분만 나쁜 생각의 생각을 해보자. 하면 당신이 이미 악마가 되어있음을 알 것이다.
이 영화(드라마)는 악의 탄생이 아니라 악의 현현(나타남, 떠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들레르의 시처럼 악의 씨는 모든 인간에게 이미 뿌려졌고 이제 그것이 꽃을 피우느냐는 세상과 당신에게 주어진 쓴 비와 같은 우연한 기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문구인 ‘방관’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악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악은 어디서 오는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깊이도 해석도 없다. 단지 부수적인 역사적 결과물(현현) 만을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악의 깊이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또 이 영화의 개봉 시점이 미국의 911 이후 정치적 흐름과 관련 있다는 것도 내 관심은 아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히틀러와 맞서고 있는 (유태인 극작가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상대인 언론인 게를리히였다.
나치로부터 죽음의 협박을 받자 그의 아내는 말한다.
“이건 역사도, 정치도 아냐. 이건 당신 문제야. 내 문제기도 하고.”(도대체 오늘 내가 사라진다면, 내일의 역사는 내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
게를리히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 견디지 못할 거야.”
(오늘 내가 사라지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침묵하는 것은 견딜 수 없어! 이 것은 내가 기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에 발 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악에 빠지지도 –동조, 곧 방관의 동조-,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않겠어! 이것이 곧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길이야.)
그는 결국 히틀러의 전체적 집권과 함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소피,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걱정시키려고 편지 쓰는 게 아니야. 마지막 부탁이 있어. 꼭 살아남아. 듣는 이가 없어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걸 널리 알려줘. 용기를 가지라고 전해줘. 그리고 그 용기를 자녀들에게 전해주라고.”
‘듣는 이가 없어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영화에서 히틀러가 자본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용한 농담인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이 악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 말인가! 내 세대가 아니면 내 아들 세대에라도.
2002 월드컵에서 우리 모든 국민은 하나로 뭉쳤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모두들 한 목소리를 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명 지식인이라 불리던) 말했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이런 힘이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저력이요, 희망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난?
무섭다!
월드컵 십 년 후,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내세우던 정당은 선거에 참패했다. 왜? 대중들은 이제 더딘 민주주의에 참을성을 잃고 있기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무엇인가가 참지 말라고 말하고 있기에. 사실 많은 것들이 좋아졌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다만 참지 못한다. 무엇을? 우리의 주인 없음을? 마치 주인을 잃은 노예처럼.
대중이 경제적 부흥을 위해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경제적 부흥’은 명목일 뿐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자신을 다스려 줄 지도자다. 아무런 갈등도 없이 따르기만 하면 되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세력이 패배한 것이 안타까운가? 하지만 그들도 그리고 당신도 냉철히 자신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우리도 영웅을 원했던 것은 아닌가’라고?
선거의 결과는 명확히 말해준다. 우리는 민주주의보다 경제보다 지배자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은 주인을 찾는 열렬한 노예의 자식과 그에 동조하는, 침묵하는 젊은이들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방향을 잃었으며 단지 어딘가에 쏟고 싶은 열정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어쩔 셈인가?
침묵해라! 그리고 때가 이르면 나가라! 그리고 외쳐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는 ‘광야의 외치는 자’이다.
2013. 03. 01
-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