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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Jan 14. 2023

영혼을 갈아 넣는 중입니다.

독서토론 9일 차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10년 간 보통 가르쳐 온 연령대는 중고등이었고, 어쩌다 가르친 초등학교 5, 6학년이 최대 낮은 학년이었는데 이번 겨울방학에 맡은 아이들은 초초초 어린 만 7세 친구들 초딩 1학년과 4학년이다.


'귀엽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 친구들은 자리에 오래 앉지도 못하며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책상 아래 기어들어가거나 언제 끝나나며 징징징 목소리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앞으로 갑자기 나오는 친구에게 왜? 라고 물었더니...

안아주세요. 선생님.


일단은 안아주고, 자리로 들어가라고 했다. 정신이 혼미. 나는 한 달 동안 독서수업을 해낼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온 첫날, 소파에 주저앉았다.

글쓰기나 활동을 하려고 했더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더 쉬운 수준으로 낮춰야 했다. 아이들은 '해결책'이라는 쉽게 던진 말도 내게 다시 뜻을 물었다.


띠옹. 그렇구나.


내가 생각하는 모든 단어들을, 내 사고의 틀을 아이들의 생각의 언어로 바꾸어야 했다.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아이들에게도 묻고 스스로도 빙의되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교대와 사범대가 왜 나누어져 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가장 핵심은 어떤 질문을 던져야 이 아이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해서 말을 하고 글로 써낼지'였다. 지난 2주, 나는 매일 깨어있는 시간 동안은 수업을 짜느라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얼얼했다.

2주 차 8번째 수업, 샤메크블루위 기법으로 밖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창조해 냈다. 한없이 푸릇한 어린아이들에게서는 가감 없는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이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동화의 주제가 해석이 되고, 새로운 질문들이 만들어졌다.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2주 차, 아이들이 눈물 나게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매일 다른 주제로 80분 연강. 쉬는 시간은 없다. (5분 쉬는 시간을 주었더니 다시 수업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난리가 남) 수업 초반에는 주제 관련 게임 20분을 진행하는데 모든 아이들이 한 번씩 모두 앞에 나와 참여하게 했다.


아이들은 직접 수업에 참여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때 자신감뿐만 아니라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는 듯했다. 우리의 수업은 모두가 주인공이며 함께 이뤄간다. 이렇게 앞에 나와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또 다음 친구를 선택하며 아이들은 서로 특별해진다.

동화책을 스캔하여 1-2권 정도 읽어주고, 교실 뒤편에 비치해 두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했던 책이네?" 라며 예상치 않게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다는 아니지만, 몇몇 친구들이 책을 가져와 읽는다.


동화책을 읽고(나름 동화구연하듯, 좀 어려운 지점) 작가의 의도와 글의 주제와 관련한 질문을 5가지 전후로 만들어 나눈다.


말로 발표하거나, 포스트잇에 써서 칠판에 붙이거나, 공책이나 미니북에 써 보기도 한다. 쓰는 과정은 가장 쉽지 않다. 그러나 생각하는 시간이 쌓이고 좋은 질문은 곱씹어보고, 짧게 그리고 조금 더 쓰기를 하다 보면 2주가 지난 오늘 아이들은 쓰고 있다.


오늘은 행복한 학교의 나만의 시간표를 짜 보았다. 1학년 남자아이가 시간표에 매일 '독서토론' 수업을 써넣었다. 나는 다가가 "그럼 우리 매일 볼 수 있겠네?" 했더니 어찌나 수줍게 웃는지 나도 모르게 안아주고 말았다. 수업시간에.


첫 시간의 포옹은 아마도, 이 수업의 복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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