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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May 22. 2023

용기가 없어 뺑소니를 쳤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를 연습하면서.

오랜만에 라스 커피.

좋았다.


마음에 쏙 드는  카페에 가서 30분이라도 앉아있으면  진짜 쉰다는 느낌. 딸기라떼와 다쿠와즈 덕분에 위로 속에 푹 담겼다. 그러고나니 새로워지는 세상.


월, 금은 지옥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마흔 넘어 이토록 지독한 상황은 처음이다. 실은 그동안 그런 상황이 생기기도 전에 줄행랑쳤다. 나는 그동안 갈등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다녔다. 굉장히 이해심 깊고 융통성있는 사람으로 스스로 착각했다.


그런데 일로 싸워보니, 알겠다. 나는 그동안 해결할 의지마저 없어 도망치는 것을 대단한 사회적 역량으로 여겼던 것이다. 부당함에 맞서 싸울 용기는 집 안의 약자들에게만 비겁하게 발휘했던 나. 그것도 부당한 것은 맞았는지.

 

2023 봄, 일하게 된 이곳은 황당했다.


1. 학년 연구실에 있는 도서로 수업할 것

2. 강의식으로 하지 말 것

3. 다음 차시 예고를 반드시 할 것.(그럴 수 있다고 봄)

4. 활동을 할때는 샘플을 만들어 와 보여줄 것.


강사가 수업에 필요한 책을 직접  고르고, 제시하는 책으로 수업하라는 말에 며칠 고민하고 그만두겠다고 했다. 서로 감정이 오고가고 타협점을 그래도 찾아 수업을 다시 짰는데, 그래도 계속되는 불협화음들. 더 힘들게 한건 강사를 대하는 태도나 말투였는데 매시간 그들은 갑의 입장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규직의 불친절은 당연한가.


스트레스로  병이 났고 2주간 병원을 오갔다. 암인것 아닌가, 혼자 별 상상을 했다. 그래서 그만두면 좋겠다며.  남편과 밖에서 점심을 먹다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남편은 그런 불협화음을 통과하면 더 큰 관계로, 일의 소통의 범위가 확대되는 거라고, 그렇게 갈등의 해결역량이 생기는 것이라했다. 숟가락으로 한 대 치고 싶었으나 맞는 말. 나는 이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마흔 넘어 처음으로 겪어내는 중이었다. 아프게 처절하게.


그분들도 나같은 강사를 만나 힘들다고 할텐데, 서로 황당한 것은 맞다. 그런데 더 파고들어보면 처음부터 할 수 있는양 아무말 하지 않았던 나, 부당한 상황에서 침묵하다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통보해버리는 나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대응의 방식을 배우는 것은 그 다음.(그것도 매일 연습 중)


싫은 소리, 싫은 표정이 불편해 늘 네,네 거리다 황당한 결론을 혼자 내리고 용기 없이 뺑소니치는 것이 어떻게 어른인가. 지금까지 수습하지 못한 사건사고들은 나를 삐그덕거리는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사회토론수업을 한답시고 공정, 정의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불의에 꼼짝못하고,  좋아보이는 그러나 실은 무기력한 도망자였다.


숨을 가다듬고, 용기있게 교문을 넘어본다.

오늘은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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