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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Jul 03. 2023

쓰러질 듯 말듯, 네번째 대본 퇴고 끝

지구의 종말을 원합니다.

7월.

아침에 눈을 뜨고, 모두가 한 숨.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출근하고 싶지 않다. 거실에 누워 누구 하나 일어나지 않는다.


대안학교, 초등학교, 병원센터 수업을 일주일 내내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도해보지도 않고. 라는 나답지 않은 오만은 작금의 사태를 불러왔다. 나는 지구의 종말을 원한다.


매주 새로 준비해야 하는 수업은 10타임 정도. 초5 독서토론부터 고3 수능문학까지 한계는 이미 넘었다. 어제 내내 문학 갈래 복합 문제를 풀며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건 참 몹쓸일이다, 싶었다. AI처럼 문학을 분석해 오지선다형을 풀다보니 진짜 기계인간이 되어가는 듯.


그리고 3월부터 계속 걸려온 우리 대표님의 감사한 전화.

대본이 한 개 두 개 늘어나 네 개가 되었다. 넉달동안 네번째 대본까지 퇴고해 송고하는 날, 글 쓰는 게 몸이 닳아지는 것이라더니. 산산히 소멸되어가는 중. 다시 연출님과 회의를 해야하지만 큰 틀은 만들었으니 산은 하나 넘었다.


아동극 초능력 방구, 경기도  화성 공연

청소년극 중독학교, 부산 공연

성악극 여덟개의 사랑, 을지로 공연

아동극 전설의 황금똥, 미정


미어터지는 일바구니 속에서 대본을 네 개나 쓰다니. 인간이란 참으로 놀랍다. 그 와중에 뮤지컬 가사를 쓰려고  대학로공연도 세 번이나 가고, 약해빠진 몸을 이끌고 주말마다 바다로 서울로 쓰러져라고 다녔다. 겹겹히 쌓인 피곤 아래 드디어 학기 종강. 신기한 것은 쓰러질 것 같을 뿐, 두 발로 여전히 오늘을 걷고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


남편이 서울에서 남몰래  파란 뾰족 구두를 신고 아이와 버스를 기다린다. 내 키를 훌쩍 따라잡으려 하는 큰 아이와 손을 잡는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했던 그와 격한 깎지.


흩어져 가는 뜨거운 여름공기, 어쩌면 어색한 마주 놓인 우리의 손바닥들, 허공을 떠도는 숱한 이야기들, 끈적한 일요일 오후와 지친 나는 7월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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