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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Jul 18. 2023

구경꾼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트시그널4과 사랑의 이해(w.레이어스클래식)

대표님께 의뢰받은 올해 세 번째 대본은 성악극이었는데 장르가 '로맨스'였다.

쓸 수 있겠지?

연애도 해봤고, 결혼도 해 봤는데 뭘.


그리고 나는 깊고도 깊은 수렁에 빠졌다. 아무리 감정을 끌어모아도 써 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저녁으로 만든 참치감자고추장 조림은 생각보다 더 맛있었으니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고야 '아, 이런 감정이었지!'싶어 그 다음날 하루종일 작업해 큰 틀을 썼으나, 부족하다. 부족해. 사랑하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사랑은 이랬다고 감정 없이 서술하는 것만 같다. 사랑은 설명이 아닌데.

그래서 보기 시작한 하트시그널4.

일하기 위해 본 예능이라니, 그것도 "내 취향 아니야."하고 시덥지 않게 생각했던 나와 상관없는 청춘남녀의 연애담. 예상대로 가장 잘생긴 남자를 모든 여자가 좋아하고, 가장 귀엽고 예쁜 여자를 모든 남자가 좋아한다. 흠. 맞아. 그랬었지.


그런데, 이 여자. 눈에 자꾸 들어온다. 이주미. 직업이 변호사라 그런지 말을 너무 잘해서 그런가? 다른 여성분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있으며 '나는 예뻐. 그러니 날 좋아해봐.'하는 방송 특유의 몸부림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가장 잘생긴 민규와 데이트를 간 주미.

임진강이 휜히 보이는 카페에서 주미는 민규에게 '그냥 쉬라' 한다. '말 하지 말고, 생각도 말고 그냥 쉬는 것'이 데이트라고. 그런데 이런 감정싸움들에 지친 이 남자가 한참을 쉬더니만, 세상에... 눈물을 보였다.  설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뭘까? 싶었다.


사람에 대한 이해.

누군가를 맞춰주거나 신경 써 주고, 살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대했다. 그런데 이주미 변호사를 보니 내 방식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필요를 잘 지켜보고, 그가 그것을 할 수 있게 그냥 두는 것이었다. '쉼'이 필요한 그를 그저 쉬게 해 준 것처럼.

하트시그널4과 함께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다시 봤다. 문가영의 연기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탄복했던 드라마였다. 대사가 내용 흐름이 너무 좋아서 봤더니 소설 원작이 있었다. 소설도 사서 바로 읽었는데 역시 원작이 좋아야 한다는 국룰. 작가의 중요성.


대본은 하트시그널4과 사랑의 이해, 조제 영화를 통해 완성해 나갔다.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랑이더라,라는 클리셰처럼 다시는 로맨스는 못 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랑에는 답이 없으니 쓰는 입장에서 내겐 매우 곤란한 장르였다. 구경만 하던 사람에겐 구경꾼의 감정만 있을 뿐이었다.


비가 오고, 레이어스 클래식의 음악을 틀었다. 비오는 날과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마감 후 듣는 음악과 편하게 쓸 수 있는 글. 그리고 자꾸 떠올랐다 가라앉는 '이해'라는 단어.


그동안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나는 구경꾼이었던 걸까.

내가 정한 선에서 적당한 이해를 건네고, 사랑이라 불렀을까.


https://youtu.be/aUnJG6OR9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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