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며칠째 대본을 시작도 못했다. 뻔하게 쓰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었는데, 결국 연출님께 연락이 왔다.
"작가님, 언제 대본 초고가 나올까요?"
제일 무서운 독촉 카톡을 받고서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옛날 옛날에'로 글을 시작했다.
2015년에 개봉한 신데렐라 영화를 온 가족이 함께 보고, 감상평을 나눈 후 대본 작업 돌입.
'나는 신데렐라다.'
'신데렐라처럼' 쓰면 반만 몰입하게 된다. 나는 그녀여야 한다. 완벽하게. 엄마, 아빠와의 추억. 그리고 새엄마와 언니들간의 갈등. 변신하는 그녀, 왕자님과의 만남. 유리구두를 다시 신게 되는 날의 설레임과 두려움까지.
쓰다 보니 어느새 A4 10장을 넘어서고, 희안하게 쓰다보면 분량을 계획한 것도 아닌데 딱 맞추어진다. 저녁 커피를 마시고 새벽 2시까지 신데렐라되어 쓰다, 내 몰골을 보니 영락없는 잿빛 누더기.
변신 전인건지, 후인건지, 아니면 영원히 변신 따위는 없는 건지를 생각하며 남은 커피를 다 비웠다. 또렷한 정신으로 새벽 2시 40분. 신데렐라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한다. 왕자 등에 업혀가는 신데렐라는 나와 다르다며 여태까지 그녀를 멸시했던가. 그래서 쉽게 시작을 못했던 건가. 이 대본.
그동안 나를 향하지 않았던 고통 덕분에 누군가를 정의내리며 살았다. 그도 '그랬을것이다' 혹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최대치의 연민으로 여겼다. 그러나 일주일동안 그녀의 생을 들여다보며 어떠한 권리로 생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 왔는지 다시 생각했다. 어떤 삶도 누군가에게 판단받 수 없다. 나에게 그런 권리가 애초에 없었다.
신데렐라 대본을 쓰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딸이 없는 내가 쓰는 공주님의 대본이 사뭇 거칠까 걱정되었다. 또 어떻게 동화음악극으로 나올지 기대도 되고. 대표님이 올리신 유리구두 포스터를 보니 작년처럼 실감이 이제서야 난다. 글이 공연으로 탄생되는 이 신비. (신데렐라가 아닌 유리구두가 메인인 포스터가 넘 마음에 들었음. 실은 나, 아닌척하며 내내 유리구두를 탐냈던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