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1일 남은 수능 앞에서 나는 수능 문학 준킬러 문제들과 매일 사투를 벌인다. 한 지문을 읽고 세네개의 문제를 풀고 나면 머리가 하얘진다. 확실히 객관식 문제를 푸는 재능은 타고 나는 게 맞다.
고3 수능 국어를 가르치는 건 피하고만 싶었던 숙명이었으나, 대안학교도 이제 수능 체제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가고 아이들도 수능국어를 보게 되니 ‘그래, 잘해보렴!’하고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됐다.
또 내년도 내 후년도 아이들이 한국에 사는 이상, 이 시험을 준비하고 보아야 할테니, ‘우린 대안학교니까 자유로운 국어수업만’을 고집하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뺏는 것 아니냐는 오랫만에 북적이는 양심.
화작은 일정한 패턴이 있어 풀다보니 요령이 생겼는데 오히려 문학은 마음 먹고 풀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보고 말하던 그 문학의 방식은 이곳에 영 적합하지 않다. 흐트러짐없이 딱 맞게 떨어지는 재미없는 세상.
비문학이야 그 자체가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글을 봐야 하니 그렇지만 이 문학도 정교한 기계처럼 문제를 인식해 풀어야 풀렸다. '나는 로봇이다'라고 생각하면 더 잘 풀 수 있을지 모른다.
수능에서 문학을 풀려면 감정을 포기하고 어떤 느낌도 이입해서는 안되는 게 맞았다. AI처럼 지문을 캡쳐해 맞고 틀리고를 따져 정답을 골라야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을 푸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과목을 수학처럼 풀어야 한다는 결론인데, 국어 문제를 몇 달동안 보면서 그것도 준킬러로 도배된 꼬이고 꼬인 선지들을 읽고 밑줄 긋고 답을 체크하다 보니, 감정 빼고 문학 읽기에 좀 성공한것 같다.
그러면서 당연히 문학에 느낌이 없어졌다. ‘느낌!’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느껴서는 문제를 풀 수도 없고, 시간도 부족하니 그런 감정은 누르고 눌러 아예 없얘버려야 오답률을 줄일 수 있었고, 우리는 등급으로써의 문학을 위해 더 쪼개서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만을 길러야 했다.
수능 앞에선 우리 아이들이 안스럽고, 어떻게 기도해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생각해 낸 게,
"얘들아, 느끼지 마! 문학."
통계 분석기처럼 문학을 풀어내라고 말하고 있는 나. 그리고 지문이 좀 어렵더라도 풀만한 문제들이 나왔으면 하는 작은 기도 .
수많은 문제를 풀다보니 좀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게 없던 논리성이 좀 키워지는 건가 싶어 다행이기도 하고. 지금 고3 아이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빨리 수능이 끝났으면 하는 간절함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