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들
“아들도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이여~”
퇴근길 배고픈 골목길을 걷는다. ‘이 가게도 장사가 될까?’ 싶은 낡은 간판의 ‘수퍼’와 중국인들의 호탕한 웃음이 새어 나오는 마라탕 가게를 지난다. 동네를 떠돌이 고양이는 날 보고 흠칫 한 번 놀라는 척하더니 다시 조심스레 쓰레기봉투를 뒤진다. 그리고 내 앞에 짙고 작은 꽃 모양이 가득한 몸빼를 잎은 한 할머니가 좌우로 몸을 흔들며 걷고 있다. 기분 좋게 혹은 기분 나쁘게 술을 한 잔 드셨는지 계속 같은 말을 큰 소리로 되뇐다.
“아들도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이여, 아들도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이여~”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이 얼마나 자주 들었던 말인가? ‘자식 농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나이가 지긋하신 저 할머니의 아들은 분명 이미 흰머리가 지긋한 중년일 것이다. 물론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오십 넘은 아들을 ‘마음대로’하고 싶은 마음,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들을 둔 수많은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자식을 ‘농사’로 본다면 그 수확의 ‘열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걸까? 그리고도 문득 배고픔이 사라진 골목길을 다시 걷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진 않았는가?”
어른들은 말한다. “너도 부모 낳아보면 내 맘 알 거야!” 나도 이제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둘인 아빠가 되었다.
낳아보니 알겠다. '자식'은 '내'가 아니라는 것.
자식은 온전한 독립적 인간이라는 것. 내가 아빠이지만, 이 아이들과 매일 함께하지만, 아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느끼고 욕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나는 그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으며, 그들의 인생, 곧 그들의 행복을 책임질 수도 없다는 것. 다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내 인생에 주어진 행복한 시간들의 선물이라는 것. 그리고 부모도 얼마든지 자식 앞에서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착각할 때가 많다. 마치 이 아이들이 내 것인 것처럼. 내가 그들의 인생을 좌우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처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소리를 지르고, 내가 원하는 길로 그들을 밀어 넣고. 할머니의 ‘세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에도 자식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아닌가? 아니 어쩌면 더 교묘하고, 더 세련되게 ‘농사’를 지으며 자식의 행복보다 그를 통해 받게 될 ‘우쭐한’ 열매들을 키워가고 있지는 않은가?
빨간 머리 앤의 엄격한 아주머니가 어느 날 문득 울음을 터뜨린다. 아주머니를 의아히 바라보는 앤에게 ‘앤, 네가 커 가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언제 이렇게 커져버린 거냐고’.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의 문구처럼,
사물은 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다.
안되겠다. 이제 글을 그만 쓰고 아이들과 바다에 가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으니.
-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