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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햇빛 속에는_나희덕

by 정아름

오랫만에 읽는다.

시(詩).

석류알을 함 웅큼 깨물은 맛일까.

아니면, 쓴 약을 벌컥 들이킨 후 오는 기분나쁜 달착지근 일까.




그 섬의 햇빛 속에는_나희덕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섬의 햇빛은 따가웠다.

녹동항에서 배로 오 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지만

수심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물결을 건너야만

이를 수 있는 곳, 그 가깝고도 먼 섬에

상처 입은 사슴들이 살고 있었다.

그 섬의 햇빛 속에는

다른 데서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햇빛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실을 막 나왔을 때

쏟아지는 햇빛이 무어라 외치는 것처럼 들렸을 뿐이다.

몽당손으로 그물을 잡고 둘러선 소년들이

파닥이는 물고기 몇 마리를 소출로 내놓은 모습도,

뗏목 하나에 의지해 바다로 뛰어들었던 남자도,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꽃수를 놓던 노파도,

길 양쪽으로 갈라선 채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눈으로만 피붙이를 만나야 했던 어미의 흐느낌도,

여든네 명의 목숨을 불태웠던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들도,

없는 것처럼 없는 것처럼 살아오지 않았던가.

바다 저편에서 단지 제 고통에 겨워 읊조리지 않았던가.

굉음처럼 따가운 햇볓 아래

다리 붉은 게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길 잃은 게가 숨어든 숲그늘,

썩어가는 손으로 전지해놓은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두 다리가 없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걸어가는 처녀의 웃음소리,

나는 햇빛 속으로도 그늘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난 우유부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무단 애를 썼다. 그런데, 난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햇빛 도 그늘도 아닌 곳' 흔들리는 그림자 아래서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한다.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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