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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벨 한 세트와 카피 한 줄

창의력은 체력이다

by 언덕파

난 광고를 사랑한다.

그리고 광고만큼이나 '운동'도 사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디어는 체력에서 나온다고 믿는 광고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다소 강박적으로 한 측면도 분명 있었겠지만

운동에 진심인 이유는 입사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간신히(그야말로 간신히)

신체검사를 통과한 어느 날 그룹 인사담당자와 짧은 면담을 했다.


"건강관리 철저" (두고 보겠어)라는 괄호도 느껴졌다.


이튿날 회사 근처 헬스클럽으로 직행했다. 턱걸이로 합격했다는 핸디캡이 동기부여가 되었을까.

바쁠 땐 점심시간에 짧고 굵게 다녀왔고, 퇴근 후에도 밤늦게까지 덤벨을 들었다.

체력은 점점 좋아졌고 매일 야근에도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운태기(운동 권태기)가 찾아왔다.

운동 그만.

지겹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일주일 되었고 몇 주가 되었다

한동안 운동을 쉬었더니 금세 티가 났다.

체력이 떨어지고 피곤한 날은 평범한 대화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회의실에서 그랬다.

광고회사의 회의실은 운동장이다. 팀원들의 '뇌'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곳.

각자의 아이디어들이 손을 잡고 뛰기도 하고, 잘난 아이디어가 치고 나가기도 한다

그런 운동장에서 내 뇌는 졸고 있었다.


'역시 뇌를 달리게 하는 건 운동이구나'

'아, 아이디어는 몸에서 나오는구나'


선배 카피라이터가 신입에게 항상 금과옥조처럼 하는 말이 있다.

'카피는 발로 써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상상으로 카피를 쓰지 말고 현장에 나가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소비자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발로 쓰라는 의미를 나는 튼튼한 발로 해석했다.

희한하게도 컨디션이 좋은 시기엔 카피도 더 잘 나왔고 인사이트를 찾는 눈도 예리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회사를 옮길 때에도 늘 주변 헬스클럽을 눈여겨 보았었고,

이사를 할 때에도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 유무를 확인했다. 직업병은 아니고 직업에서 생긴 병일지 모르겠다.



운동 없이도 아이디어 잘 내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특별하게 몸 관리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회의실에선 날아다녔다.

타고난 감각과 스토리를 만드는 카피가 줄줄 나온다. 한 때는 그들을 따라 해보려고 했다.

모방해보려고 했다. 그들처럼 책도 읽고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하고 음악도 듣고 생각도 많이 하고

벤치마킹 대상은 매일 늘어갔다. 주옥같은 카피 한 줄을 뽑아낼 수 있다면야 그쯤이야.

결론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난 역시 몸으로 때워야 하는 체질. 그래서 운동에 더 매달렸다.

헬스클럽 한 시간의 '땀'은 회의실 한 시간의 '답'으로 이어졌다.

이후 25년 넘게 땀과 답의 신비로운 인과관계를 경험해 오고 있다.

체력이 재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밤 10시.

러닝복과 모자, 장갑, 양말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러너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침 6시에 졸린 눈으로 일어나 옷 챙기다가 귀찮아 침대로 돌아가기를 수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월수금은 러닝복을, 화목은 헬스가방을 미리 챙겨놓는 게 한밤 중의 루틴이다.

어떤 날은 아예 러닝복을 입고 잠들기도 했다. 일어나면 바로 뛰어나가려고.


"좋은 카피는 발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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