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리브랜딩은 디자인이 아니라 고객 재정의다

by 언덕파

리브랜딩을 결정하는 순간, 대부분의 브랜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디자인 에이전시에 연락한다. 로고를 바꾸고, 컬러를 바꾸고, 폰트를 바꾼다. 새 아이덴티티가 나오면 SNS에 올린다.

"우리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매출도, 고객도, 시장에서의 위치도. 리브랜딩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같다. 디자인을 바꿨지 고객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갭이 실패한 이유

2010년, 갭(GAP)은 로고를 바꿨다. 20년간 유지해온 파란 박스 로고를 버리고 새로운 디자인을 내놨다. 고객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분노였다. 소셜미디어는 들끓었고, 갭은 결국 6일 만에 원래 로고로 돌아갔다. 리브랜딩 비용만 날린 셈이었다. 갭이 놓친 건 로고가 아니었다. 갭을 갭이게 만든 고객이 누구인지를 놓쳤다. 그 고객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왜 갭을 선택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디자인 회의실에서 결정된 리브랜딩이었고, 고객은 없었다.



리브랜딩이 성공하는 순간

올드스파이스(Old Spice)는 달랐다. 중년 남성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건 로고 교체가 아니었다. 타겟을 바꿨다. 중년 남성이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여자친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당신의 남자가 올드스파이스를 쓴다면"이라는 메시지로. 고객을 재정의하자 제품은 그대로인데 브랜드가 완전히 달라졌다. 버버리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노동계층의 체크무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버리가 한 일은 패턴을 없애는 게 아니었다. 누가 이 체크무늬를 입어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했다. 럭셔리를 원하는 글로벌 소비자로 타겟을 옮겼고, 디지털 채널을 가장 먼저 공략했다. 디자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고객이 바뀌었다.


배달의민족이 보여준 것

국내에서 가장 선명한 사례는 배달의민족이다. 배달 앱으로 시작했지만 배민이 진짜로 재정의한 건 고객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할이었다. 배달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을 즐기는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유머, B급 감성. 배달 앱이 문화 브랜드가 됐다. 앱 기능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누구에게 말하는지가 달라졌다. 그 순간 배민은 배달 앱 카테고리에서 벗어났다.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포지션을 만든 건 기술이 아니라 고객 재정의였다.


고객 재정의란 무엇인가

고객을 재정의한다는 건 기존 고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브랜드가 진짜로 말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 것이다.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 우리 브랜드를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가 원하는 고객은 누구인가. 그 두 그룹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가. 이 간격이 리브랜딩의 실제 과제다. 로고는 그 과제가 해결된 다음에 바꾸는 것이다. 순서가 반대가 되면 갭처럼 된다. 비용을 쓰고, 반발을 받고, 원점으로 돌아온다. 리브랜딩 예산의 대부분은 디자인이 아니라 이 질문을 정확하게 푸는 데 써야 한다. 그 답이 나오면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리브랜딩 전에 먼저 해야 할 것

디자인 에이전시에 연락하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1)우리는 누구를 잃었는가.

2)우리는 누구를 얻고 싶은가.

3)그 사람에게 지금 우리 브랜드는 무엇으로 보이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리브랜딩의 방향이 나온다. 답하지 못한다면 로고를 바꿔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디자인은 방향이 정해진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다. 브랜드가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 때, 먼저 거울을 봐야 한다. 거울 속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게 리브랜딩의 시작이다. 리브랜딩은 디자인이 아니다. 고객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판단이 먼저다. 디자인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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