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장애물 중 하나가 벙커일 것이다. 골퍼에겐 디폴트다. 볼에 눈이 달린 건지 칠 때마다 잘도 찾아 들어간다. 벙커 피해서 칠 거야 하면 어김없이 벙커에 들어가고 만다.
특히 그린사이드 벙커는 초보들의 담력 테스트장 같기도 하다.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골퍼가 벙커에 빠지면 한 번에 나오는 건 불가능한 도전이다. 수차례의 샷 혹은 그 이상. 동반자들이 그냥 들고 나오라는 배려도 종종 목격되곤 한다. 그만큼 벙커는 익숙하지 않은, 또 평소 연습하지 않은 골퍼에겐 악몽이 된다.
골프클럽 중 샌드웨지가 있다. 보통 로프트가 56도 정도의 웨지를 말하는데 샌드는 모래다. 벙커샷에
잦게 디자인된 클럽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특히 초보는 벙커샷 연습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레슨영상을 보기도 하고 대회에서 선수들이 하는 루틴과 해설을 귀담아듣기도 한다. 대부분
족집게 공식을 알려준다. 벙커에 들어가면 어떤 스탠스를 하며, 클럽을 얼마나 오픈하고 어떤 스윙으로 휘둘러야 탈출이 쉬운지를 알려준다. 흔히들 숏게임은 공식을 외우면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롱게임과 달리 스윙이 크지 않고 거리도 적게 보내기 때문에 공식에 대입해 치면 얼추 괜찮은 결과를 얻는다.
그러나 코스에서 그 족집게 일타 공식 대입이 쉬울까. 볼이 모래 위에 떨어지는 순간,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아… 또 벙커네.” 어떤 날은 모든 샷이 벙커로만 갈 것 같다. 누가 내 볼을 조정하는 것 같다.
벙커는 피하는 게 최선이라고들 말하지만, 어디 마음대로 될까? 오히려 피하려다가 더 깊은 모래에 박히기도 한다. 골프가 그렇고, 삶이 그렇다.
얼마 전 꽤 오랜만에 라운드를 나갔다. 티샷은 대체로 좋았다. 오래간만에 나간 것치곤. 다만 세컨드샷 몇 개가 살짝 밀리며 그린사이드 벙커에 들어갔다. 머릿속에서 공식들이 켜진다. 수학 공식처럼 그래, 대입하면 될 일이야 하며 벙커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간다. 샷하기 직전 다시 한번 탈출 공식이 자동 재생된다.
-클럽을 열어 잡고
-얼리 코킹
-아웃-인 궤도로
-볼 뒤 3센티를 보며
-모래를 먼저 때리며 가속!
이론은 완벽했다. 그런데 결과는? 볼은 간신히 벙커 턱 위로 날아가며 멈춰 섰다. 공식대입에 실패.
머리로는 분명히 정답이 나왔는데 실행 결과는 엉망이었다. 하하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작은 깨달음.
'머리로만 아는 건 소용없구나'
레전드 골퍼이자 벙커샷의 대가 최경주 선수는 고향 완도의 바닷가에서 벙커샷을 연습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마른 모래와 젖은 모래 등 다양한 모래 특성에 맞게 연습을 했다. 하지만 벙커샷을 잘하게 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한다. 미국 그린사이드 러프 잔디가 너무 억세고 질긴 탓에 거리조절이 어려워 차라리 벙커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벙커샷 연습을 더 열심히 했고 그게 그의 무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가장 자신 있게 벙커샷을 했던 때가 있었다. 파3 연습장 벙커에 들어가 두 시간 동안 모래만 치던 시절. 모래가 얼굴에 튀고, 클럽은 흙투성이가 되던 그때. 수십 번, 수백 번의 실패 끝에 몸이 기억한 샷이 만들어졌었다. 그때는 어떤 벙커도 두렵지 않았다. 볼은 모래에서 경쾌하게 튀어나갔고, 가끔 홀컵 근처에 ‘착’ 하고 붙기도 했었다. 공식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감각은 반복에서만 만들어진다.
얼마나 많은 벙커 공식을 알고 있든, 몸이 까먹으면 소용없다. 모래 속 볼은 매번 다른 상황에 있다.
깊이, 질감, 경사… 공식만으로는 다 풀어낼 수 없다. 골퍼의 마음은 이미 그린에 가있는데 공식만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결국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내가 벙커를 낯설어했던 이유는 공식을 잊어서가 아니라, 연습의 기억이 옅어졌기 때문이었다. 골프 얘기를 하면서 삶까지 거창하게 연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스친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삶에서도 매뉴얼과 지식은 넘치지만, 실제로 부딪혀 본 사람만이 아는 감각이 있다. 그 감각은 수없이 시도하고, 틀리고, 다시 해보는 과정에서 나온다. 파3 연습장에서 홀로 연습하는 골퍼를 볼 때가 있다. 묵언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혼자만의 공식을 써가고 있는 사람. 그 공식을 몸으로 증명해 가는 사람은
코스에서 스코어로 보상받는다. 스코어 그 이상의 본인만 아는 쾌감일지도 모르겠다.
벙커에 빠졌다고 너무 심각해질 필요 없다. 어차피 벙커샷도 라운드의 일부고, 실패도 골프의 일부다.
볼이 멋있게 나가 홀컵 근처에 붙으면 그날은 보너스 같은 날인 것이고 탈출에 실패하면 그걸로 피드백을 얻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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