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캐디는 스코어가 아니라 분위기를 만든다
골프를 치다 보면 각자 선호하는 캐디의 스타일이 생긴다.
퍼팅 라인만 정확히 읽어주면 만족한다는 골퍼도 있고,
빠르게 카트를 몰며 라운드 흐름을 끊김 없이 이어주는 캐디를 좋아하는 이도 있다.
혹은 지나치게 나서지 않고 물 흐르듯 진행해 주는 캐디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내 기준은 조금 다르다. 정확한 정보 제공과 공감 능력이 높은 캐디를 선호한다.
선호한다고 해서 그런 캐디를 배정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캐디나 골퍼나 어쩌면 그날의 운으로 만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불복이다. 아마추어는 캐디에 영향을 좀 받는다. 캐디도 마찬가지.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이면 라운드가 편하고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물 흐르듯이.
없던 실력도 뿜뿜 나오는 골퍼도 있다. 그만큼 캐디와의 호흡은 중요하다.
매 홀마다 캐디는 홀 설명을 하고 거리에 맞는 클럽을 뽑아 골퍼에게 전달하며 진행한다.
나는 거리 측정기도 직접 들고 다니고, 세컨드샷·서드샷 클럽도 스스로 챙긴다.
티샷이 크게 오비로 날아가거나, 산과 호수로 사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 자랑 같기도 하지만
캐디의 일을 덜어주는 건 분명하다. 특히 요즘처럼 폭염 날씨에 평평한 운동장도 뛰기 힘든 날
언듈레이션이 심한 산악지형 골프장은 그야말로 고된 노동의 현장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골퍼마다
실력은 엄연하게 존재해서, 치는 족족 먹줄처럼 반듯하게 갈 수는 없다. 언덕으로, 나무밑으로 또는 물속으로 혹은 아예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불을 찾으러 가는 발길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캐디도 분주해지는 상황이다.
매홀의 마무리는 그린 플레이다. 난 공만 닦아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라이도 내가 체크하고
최종 결정도 내가 한다. 어떤 골퍼들은 볼 닦는 수건까지도 벨트에 차서 직접 볼을 닦기도 한다. 캐디의 일을 덜어주는 배려이기도 하다. (난 볼 수건을 벨트에 차는 걸 싫어해 그린에 올린 볼만 닦아달라고 부탁하는 편이다.)
그날 역시 한여름, 숨 막히는 폭염이 내리쬐는 7월의 라운드였다.
동반자들은 모두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가진 중 상급 골퍼들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캐디는 크게 개입하지 않고, 그저 진행만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수준에서 머물 때가 많다.
각자 알아서 자신의 클럽을 챙겨가고 자신의 거리측정기로 핀까지 거리도 직접 측정하니까.
하지만 그날 만난 캐디는 달랐다. 폭염 속에서도 4명의 모든 샷 위치를 직접 찾아다니며
자신의 거리 측정기로 정확한 거리를 불러줬다. 거리를 불러주면 우리는 거리에 맞는 클럽을 챙겨갔다.
내 측정기와의 오차는 단 1미터도 없었다. 세컨드샷 전에 미리 전략적 조언을 해줘서 어떤 클럽으로 칠지 도움을 줬고 퍼팅 라인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짧고 명확하게 알려줬다.
쓸데없이 말을 늘리지도 않고, 정보를 요청한 골퍼에게만 한 마디씩. 스마트했다.
앞서서 최고의 캐디 기준 중 하나로 공감능력이라고 했다. 예들 들면 이렇다.
“굿샷!” 하고 힘 있게 외칠 때는 폭염도 잊을 만큼 시원했고 아쉽게 퍼팅이 빗나가면
마치 자신이 놓친 것처럼 같이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라운드 후반, 땀이 비 오듯 쏟아지던 순간 코스 중간에 있던 그늘집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었다.
그녀 역시 아이스크림을 들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더워서 요즘 매일 하나씩 먹는다고 했다.
“최근 만난 캐디 중 최고의 캐디 같아요.” 당황해하며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되묻는다.
“진짜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미소와 함께한 순간이 오래 남았다. 그건 단순히 ‘고마움’ 이상의 감정이었다.
플레이어를 진심으로 돋보이게 해주고 싶은 마음,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었으니까. 스레드에 같은 글을 올렸더니 어느 스친이 댓글을 달았다. '일주일 동안 덕을 쌓아야 그런 최고의 캐디를 만날 수 있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스코어의 경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라운드를 오래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스코어만큼이나 함께하는 사람과의 공기가 플레이를 좌우한다는 것을.
그날의 캐디는 단순히 진행을 돕는 사람이 아니었다. 플레이의 리듬을 살려주고, 각 샷의 긴장감을 덜어주며, 라운드 전체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 디테일과 태도는 나와 동반자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것 같다.
60대의 현역 레전드 골퍼 김종덕 선수에게 한여름 뙤약볕에서의 시합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이게 우리의 직업이다. 그저 묵묵히 나의 플레이할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작은 디테일과 태도로 기억된다.
골프에서도,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맡은 자리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 그게 결국 프로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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