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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 골프의 독이자 약

-골프장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위험한 조언에 대하여

by 언덕파

골프에는 바둑의 ‘훈수(訓手)’ 같은 풍경이 있다.
훈수란, 바둑을 구경하던 사람이 끼어들어 수를 가르쳐주는 행위.
바둑에서는 이게 성가신 간섭이지만, 때로는 묘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골프도 비슷하다.
골프만큼 ‘선생이 많은 스포츠’도 드물다. 하루 먼저 입문한 골퍼가 하루 늦게 입문한 골퍼에게
“그립을 좀 더 강하게 잡아봐”
“테이크백은 이렇게 빼야 돼”
“어깨를 돌려, 더 돌려!”
마치 자기만의 비밀 레슨을 쏟아내듯 가르친다. 연습장 옆 타석 골퍼가 와이파이를 그리며 난사하는

초보골퍼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주는 상황도 흔하다. 누구라도 선생을 자처한다.

하지만 동반자끼리의 훈수는 친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냐하면 골프 스윙은 ‘몸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라운드 중에 갑자기 새로운 동작을 입력하면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샷은 엉망이 된다.
결국 결과는 더 나빠진다. 물론 훈수가 항상 나쁘다는 건 아니다.

가끔은 고수의 한마디가 트러블 상황에서 묘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상황에선 무리하지 말고 레이업해” 같은 전략적 조언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스윙 메커니즘을 건드리는 훈수는 코스 위에서는 거의 항상 독으로 작용한다.

골프는 실전이다. 연습장에서 몸에 익힌 스윙만이 코스에서 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라운드 중 훈수는 독이 될 확률이 높다.
약이 될 수 있는 훈수는 오직 ‘전략적 조언’, 스윙은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


라운드는 연습장이 아니다

코스에 서는 순간, 골프는 실전이다. 연습장에서 수없이 반복한 루틴과 스윙만이 몸에 남아 있다.
빠꾸 없는 원샷. 잘 맞든, 잘 안 맞든, 그 결과가 오늘의 답이다.

라운드 도중 미스샷이 나왔다고?
옆에서 "백스윙 좀 더 작게 해 봐", "팔이 빨리 나갔어" 같은 말이 날아온다면?
그 순간 스윙은 분절되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확신 없는 조언이 입력된 스윙은 죽도 밥도 안 된다. 결과는 대개 더 나쁘다.


초보들의 속마음 – ‘누가 좀 알려주면 안 되나?’

초보들은 경험이 없고 자기 스윙이 없다.
트러블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럴 땐 어떻게 치는 거지?” 마음속으로 팁을 갈망한다.
동반자 중에 누군가 한마디 해주길 기대한다.
미스샷이 나오면 왜 그랬는지, 고수의 한마디로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중수 골퍼도 다르지 않다. 미스한 직후, 혹은 동반자의 완벽한 샷을 보며

“어떻게 쳐야 저렇게 핀에 붙일까?” 속으로 묻는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코스는 연구하며 치는 곳이 아니다.
경험은 본인의 몫이고, 샷 하나하나가 스스로에게 가르쳐주는 레슨이다.
그래서 골프에서는 ‘잔디밥’이라는 말이 있다.
잔디 위에서 밟고 넘어가며, 몸으로 익히는 법밖에 없다.


스윙은 연습장에서 다듬는 것

스코어에는 요행이 없다.
죽어라 연습했다고 해서, 그만큼 보답하는 것도 아니다.
골퍼들은 안다. 그래도 연습만이 살 길이란 걸.
라운드가 끝난 후 연습장으로 가는 골퍼, 그 과정에서 실력은 손톱처럼 자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분명히 실력이 자라 있고 성장해 있다.


최고의 레슨영상은 내 스윙 안에 있다

유튜브 레슨 영상을 아무리 봐도
남의 스윙을 짜깁기해 내 몸에 붙이긴 어렵다.
가장 효과적인 레슨 영상은 자기 자신의 스윙이다.
핸드폰으로라도 스윙을 찍어보고, 스스로 확인해 보자.
연습장에서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언덕파의 골프 팁]

- 라운드 중엔 절대 훈수하지 말 것. 동반자에게도, 자신에게도.

- 실패는 코스에서, 수정은 연습장에서.

- 자기 스윙을 촬영하라. 자신의 비포 애프터를 확인해갈 수 있는 좋은 레슨영상이다.

- 초보라면 미스샷을 두려워 말고 ‘잔디밥’을 많이 먹어라. 특히 파3 연습장.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다.



삶도 골프코스와 닮았다.
실전에서 계속 스스로를 가르치려 들면 더 꼬인다.
오늘은 그냥 오늘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내일을 위한 연습은 내일의 시간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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