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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퍼팅연습, 골프화까지 신는 이유

by 언덕파

집 베란다에 퍼팅매트가 하나 있다. 대략 가로 3미터 정도. 아마 골퍼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는 흔한 매트다. 짧으면 짧은 대로 길고 넓으면 넓은 대로 매일 잠깐이라도 스트로크 연습하기에 제격이다. 그래야 안심이 되고 연습장에 못 가더라도 퍼팅만은 한다는 위로가 된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보면 거추장스러운 매트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매일 몇 번이라도 스트로크를 익히는 미니 연습장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폭염이 심한 날엔 연습장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사부 프로가 운영하는 도곡동 사거리에 있는 실내연습장을 찾았다. 작년에 얼굴을 뵌 후라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아메리카노를 살까 하다가 박카스 한 박스를 샀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립얘기부터 샷얘기까지 한참을 Q&A를 했다. 두서없이 여러 얘기를 나누다 퍼팅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다름 아닌 사부 프로의 퍼팅 루틴이었는데 집에서 퍼팅할 때도 골프화를 신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집에서도 골프화 신고 퍼팅해. 그냥 한 번 해봐”
속으로는 ‘아니, 그걸 굳이?’ 했다, 오며 가며 가벼운 맘으로 하는 게 퍼팅연습인데 굳이 신발까지 신어야 하나. 사부 프로는 대회 출전을 해야 하고 직업이니까 그런 거고 난 아마추어잖아! 좀 오버하는 거 아냐?

집에 와서 퍼팅연습을 하려다 골프화 얘기가 떠올라 처박아둔 오래된 골프화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집에서 입는 반바지에 골프화라니... 그냥 한 번 따라 해봤다.

어라?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맨발일 땐 생각 없이 스트로크 하던 자세가, 골프화를 신는 순간 묘하게 달라진다. 허리 숙임 각도, 클럽 그립의 높이, 무게중심을 양발로 지탱하는 감각 그리고 백 스트로크 후 전환 동작까지— 뭔가 더 ‘신중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신기하네. 골프화는 실외에서나 신는 특별한 신발이지

집 안에서 신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골프를 오래 했다고 생각해 왔는데 난 여전히 틀 안에 갇혀 있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퍼팅매트를 밟기 전에 슬리퍼 대신 골프화를 꺼내고 있다.

오래돼서 버릴까 했던 골프화 한 켤레를 베란다 옆에 따로 놓았다. 솔직히 좀 귀찮긴 하지만 신었을 때와

신지 않았을 때의 감각은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겠지.



프로는 습관을 연습하고, 아마추어는 실수만 반복한다

골프에서 퍼팅을 비롯한 숏게임은 ‘감각’이라지만, 그 감각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연습장에 가서 보면 대부분은 아마추어들이 보인다. 간혹 프로로 보이는 골퍼도 보이는데 그가 프로인지 아닌지 첫눈에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바로 옷차림이다. 우리는 회사에 출근할 때 후줄근한 반바지와 늘어진 티셔츠를 입지 않고 반듯한 캐주얼 또는 정장을 입는다. 골프 프로도 마찬가지일터. 프로들은 연습장에서도 코스에서 입는 골프웨어를 입는다. 반면 아마추어들은 갓 퇴근한 옷차림이거나 집에서 편하게 입고 나온 옷차림이 대부분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옷차림에 머물지 않는다. 샷을 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다.

프로는 하나의 샷을 할 때도 그립, 셋업, 루틴을 생략하지 않는다. 아마추어가 볼 서너 개를 치는 동안 겨우 하나 때려낸다. 볼 하나 치는데 오래 걸린다. 실전 루틴대로 치기 때문이다. 실전처럼 치는 것이 그들에게는 일상이자 기본이다. 그게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대부분 대충 친다. 옆에서 지켜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허겁지겁 친다. 누가 누가 많이 치나의 대결 같기도 하다. 한 시간 또는 80분 연습권을 끊고 쉼 없이 때린다. 볼 하나라도 더 치려고 연습스윙은 생략. 스탠스도 대충. 타깃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날도 더운데 더 땀이 난다.
왜일까. 연습을 ‘양’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실전의 재현’이다. 연습장에서의 연습은 실전을 위한 리허설이지 체력 훈련이 아니다. 한 번의 샷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루틴을 지키며,

자신만의 감각을 어떻게 반복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가. 이게 실력 차이를 만든다.


디테일은 열정의 다른 이름

골프화 하나 신는 일. 누군가 보면 ‘오버’라고 하겠지만, 그 오버가 모이면 루틴이 되고 실력이 된다.

퍼팅라인을 읽을 때 그린의 기울기를 체감하는 발바닥 감각. 스트로크 때 지면과의 마찰감. 작은 디테일 하나가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퍼팅매트 위에서 골프화를 신는 나를 보며, 가끔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웃음엔 나름의 뿌듯함이 섞여 있다. “나는 지금, 허투루 치지 않는다.”

집에서 골프화를 신는 그 순간, 게임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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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은 작은 습관의 총합이다

주말골퍼들의 문제는 비슷하다.
“코스만 나가면 감이 안 살아.”
“연습 땐 잘 되는데, 왜 실전만 가면 폭망이지?”
이유는 분명하다. 연습이 실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실전에서의 감각은 습관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습관은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다. 단 10분의 연습이라도 실전처럼. 맨발이 아닌 골프화처럼.

허투루 휘두르지 않고, 오늘의 한 샷에 집중한다면— 그게 곧 나만의 루틴이고, 내가 만든 실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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