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닝이 가르쳐준 골프의 리셋
트럼프는 골프를 사랑한다. 정치인이 아닌 골퍼로서 그는 골프 마니아다. 대통령 시절에도 주말이면 코스로 향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장을 세계 곳곳에 세웠다. 언제나 “나는 핸디캡 2야”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는 골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도 한 번쯤은 클럽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지 않았을까? 공이 말을 듣지 않고, 스윙은 흔들리고, 잘 치려 할수록 미스가 나는 날. 자신감이 넘치던 그조차 “오늘은 왜 이러지?”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상상을 해본다. 골퍼 트럼프에게도 슬럼프는 있을까? 그리고 그가 느꼈을 감정은 아마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골퍼라면 전 세계 누구나 똑같이 겪는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에서부터 이름 모를 동네에 사는 골프입문자까지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다. 요즘 말로 골태기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골퍼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공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코어는 요동쳤고 연습량은 그대로인데 왜인지 몸은 굳고, 마음은 더 굳어간다. 이유 또한 골퍼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엔 돌이켜보니 명확했다. 완벽주의, 남의 시선, 비교, 무모한 목표, 아마추어리즘의 망각. 언젠가부터 나는 골프를 즐기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수단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가 이 정도는 쳐야지.”
“저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해.”
“이 정도 연습했는데 결과가 왜 이래?”
그 욕심이 쌓이자 샷 하나하나가 시험처럼 느껴졌다. 재미가 사라지고, 불안이 커졌다. 공이 날아가도 마음은 늘 불만이었다. 어느 날 라운드에서 티샷, 세컨드샷, 퍼팅까지 죄다 폭망 하던 날. 그날은 스코어보다 더 아픈 게 있었다. ‘내가 왜 골프를 하고 있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를 때렸다. 그때부터였다. 슬럼프가 찾아온 건... 대략 3년 전쯤이었다.
어떤 슬럼프가 되었든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상하게도, 슬럼프는 붙잡을수록 깊어진다.
“왜 안 되지?”
“어디가 문제야?”
분석하면 할수록 더 꼬였다. 방법이 안보였다. 골프 슬럼프는 골프에서 머물지 않고 일상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 떠오른 솔루션은 '멈춤'이었다. 골프클럽을 무작정 내려놓았다. 어떠한 동영상도 보지 않았고 골프 관련 장소 근처엔 얼씬거리도 않았다. 대신 동네 탄천을 걷고 달렸다. 러닝을 꾸준히 했고, 헬스도 틈틈이 했다. 골프와 가장 멀리 있는 루틴으로 나를 밀어냈다. 달리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스윙 생각도, 스코어 계산도 사라졌다. 그저 호흡에 집중했다. 발끝이 땅을 차는 리듬,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도. 그 단순한 리듬 속에서 잊고 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골프를 잘 치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좋아했던 시절의 나. 러닝은 나에게 골프보다 더 큰 교훈을 줬다. ‘조급해하지 말 것. 속도를 조절할 것.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성장이라는 것. 슬럼프는 무너짐이 아니라 리셋의 신호라는 것. 몸이, 마음이 나에게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 봐”라고 말하는 순간이랄까. 러닝은 지금도 하고 있지만 경험해 보니 슬럼프 극복에 강력한 도움을 주는 루틴이라는 것이다.
골프에서의 슬럼프는 삶의 슬럼프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완벽을 꿈꾸며 남과 비교하고 인정받으려 애쓰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점점 옥죈다. 일상의 즐거움이 사라진다.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엔 불안과 조급함만 남는다. 하지만 잠시 멈추면 보인다. 처음 골프를 시작하던 날, 첫 라운드에서 웃던 나, 첫 버디에 환호하던 나. 그 순수함이 사라졌을 때 슬럼프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러닝을 하며 시간을 보내자 자연스럽게 골프와 거리가 생겼다. 한 달, 두 달… 클럽을 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골프가 그리워졌다. 페어웨이의 초록, 그린 위의 정적, 티샷의 긴장감. 다시 클럽을 잡았을 때 손끝의 감각은 낯설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남의 시선보다 나의 리듬에 집중했다. 어라? 슬럼프가 사라졌나. 정확히 말하면, 슬럼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그건 적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선생이었다.
슬럼프를 겪지 않는 골퍼는 없다. 올해 마스터스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던 로리 매킬로이도 우승 전까지 꽤 깊은 슬럼프를 겪었다, 결국 누구나 언젠가 맞이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우리가 성장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공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스윙이 꼬일 때, 멘털이 흔들릴 때. 그건 “너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갈 때야”라는 몸과 마음의 메시지다. 골퍼 트럼프에게도 슬럼프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자존감 높은 사람 같지만, 그에게도 작은 공 하나에 흔들림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슬럼프를 겪는다. 하지만 슬럼프는 끝이 아니라 리셋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완벽을 꿈꾸는 자에게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리셋이다. 달리며 배운 건, 비거리가 아니라 골프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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