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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의 시대에서 데이터의 시대로

- AI가 스윙을 알려줘도, 결국 치는 건 사람이다

by 언덕파

예전 인도어 연습장에 가면 공통된 풍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벽면마다 걸려 있던 타이거 우즈와 어니 엘스의 스윙 시퀀스 화보. 당대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던 스윙이었죠. 연습장 휴게실에 앉아 김이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스윙 동작을 따라 하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화보 앞에서

“나도 저렇게 칠 수 있을까” 하며 어깨를 돌려봤을 겁니다. 그 시절엔 ‘아름다운 스윙’이 골프의 목표였습니다. 사진처럼 완벽한 테이크백, 정지된 순간에도 예술처럼 보이는 피니시. 스윙은 미학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연습장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벽에 걸린 건 더 이상 ‘타이거의 화보’가 아니라, 모니터와 데이터 그래프입니다.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전 요즘 볼 스피드 올리는 연습에 열심입니다. 드라이버 비거리를 늘리는 게 최종 목표죠. 수동으로 볼을 받아와서 치던 시절엔 상상도 못 하던 연습입니다. 타석마다 설치된 센서와 모션 인식 장비는 볼 스피드, 발사각, 스핀양, 캐리 거리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해 주니까요.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스윙을 촬영해 즉석에서 리플레이하는 세상입니다. 한마디로, 스윙의 시대에서 데이터의 시대로 옮겨온 겁니다. 이젠 “폼이 멋있다”보다 “볼 스피드가 1m/s 올랐네”가 더 큰 칭찬이 됐습니다. 아름다움보다 효율, 감각보다 수치. 골프는 점점 ‘과학의 언어’를 배우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프로의 폼을 따라 하는 게 골프의 첫 단계였습니다. “타이거처럼 백스윙을!”

“어니 엘스처럼 부드럽게!”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프로의 스윙을 그대로 흉내 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자신에게 맞는 ‘나만의 스윙 데이터’를 찾는 시대가 됐습니다. 아름다움보다 안정성, 폼보다 결과. “내 몸의 리듬과 타이밍에 맞는 스윙이 진짜다.” 이 말은 데이터 시대의 골퍼들이 가장 공감하는 문장일 겁니다.


일상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 골프도 이미 AI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코스 예약, 티타임 관리, 거리 측정, 스코어 기록, 심지어 스윙 분석까지 모든 것이 자동화되었습니다. AI 코치 앱은 당신의 스윙을 분석해 “백스윙 속도가 3% 느립니다.” “헤드 로테이션이 과합니다.”라고 알려줍니다. 기술은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골프에서 사람은 어떤 역할을 할까?” 어제 TV에서 본 장면이 떠오릅니다. KLPGA K-FOOD 놀부·화미 마스터즈 대회에서 우승한 홍정민 선수의 스윙이었습니다. 그녀의 스윙은 여느 선수들 스윙처럼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리듬도 빠르지 않았고, 회전도 과하지 않았죠.

그냥 담백했습니다. 음식으로 치자면 마치 소고기 뭇국처럼 심심했죠.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스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88CC의 긴 전장을 압도했습니다. 파워보다 리듬, 완벽함보다 자연스러움으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이건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의 스윙’이었습니다. 아날로그 같은 스윙 느낌이랄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로봇이 코스를 누비지는 못할 겁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어도 공을 치는 순간의 긴장감, 손끝의 감각, 샷 후의 안도감은 알지 못합니다. 골프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그날의 컨디션, 마음의 무게, 바람의 방향,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스윙은 기술이 만들지만, 골프는 사람이 완성한다.”


타이거 우즈의 스윙을 흉내 내던 시절도, 데이터로 스윙을 해석하는 지금도 결국 골프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당신의 리듬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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