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완벽을 꿈꾸지만, 여름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스개 소리로 가을은 빚내서라도 골프 한다고들 한다.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완벽한 온도와 바람 그리고 습도까지 골프 하기에 최적의 시즌임을 일컫는다. 하늘은 높고, 공은 잘 뜨고, 땀도 덜 난다. 골프 잡지엔 가을 필드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광고 잡지엔 이런 문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골퍼의 계절, 가을.”
하지만 나는 여름이 좋다. 계절도 겨울 보다 여름을 좋아한다. 그 뜨거운 공기와 땀 냄새, 살이 따갑게 익어가는 느낌까지 포함해서. 봄가을은 스치듯 지나가버린다. 칠만하면 추워진다.
한여름의 티오프. 폭염 골프를 경험한 골퍼라면 고개를 절레절레할 것이다. 벌써 티잉 그라운드에 서기도 전에 땀이 난다. 모자는 축축하고, 셔츠는 금세 등에 달라붙는다. 하지만 난 신기하게도 그게 싫지 않다.
햇빛이 쨍할수록 집중이 된다. 공의 흰색이 더 또렷하게 보이고, 페어웨이의 초록은 더 짙게 살아난다.
손끝의 감각이 살아나고, 온몸이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한다. 한 여름의 라운드는 감각의 운동이다.
“시원하다”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훨씬 크다. 여름 골프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간편함이다. 두꺼운 바람막이도, 발열내의도, 패딩조끼도 필요 없다. 반팔, 반바지, 장갑 하나면 충분하다. 가을 겨울엔 옷을 여러 겹 껴입다 보니 스윙이 늘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여름엔 다르다. 몸이 가볍고, 마음도 가볍다. ‘스윙’이 아니라 그냥 ‘움직임’으로 느껴진다. 이 계절엔 골프가 운동이라기보다 놀이처럼 다가온다. 동반자들과의 대화, 웃음소리, 그림자조차 밝게 느껴지는 여름의 필드. 집을 나설 땐 듀스의 여름 안에서 노래를 들으며
차를 몰기도 한다.
여름 골프의 하이라이트는 18홀 마지막 퍼팅이 아니다. 라운드 후의 냉수 샤워다. 온몸이 뜨겁게 달궈진 뒤 찬물에 몸을 맡기는 그 짜릿한 순간. 모공이 열렸다 닫히는 그 짧은 쾌감. 그건 단순한 씻김이 아니라
“오늘 하루, 다 살아냈다”는 실감이다. 이후 마시는 한 잔의 아이스커피. 평소엔 밍밍하게 느껴지는 그 맛이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료가 된다. 나는 여름 라운드가 좋은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를 꼽으라면 ‘시간의 잔상’이라고 말하겠다. 라운드가 끝나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는다. 해 질 녘의 붉은빛이 여전히 차창에 머물고, 도로는 길게 이어진 여름의 냄새로 가득하다.
창문을 살짝 열고 존 케이의〈패러슈트>를 틀면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나 오늘, 잘 살았구나.”
그런 기분이 든다. 가을엔 이런 순간이 없다. 경치에 감탄하고 높은 하늘에 취해있다. 내적인 집중보다 외적인 환경에 넋을 잃는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 저녁의 길 위는 어둡고 조용하다. 여름의 저녁은 아직 ‘살아 있는 시간’이다. 해가 길어 라운드가 끝나도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
가을이 완벽을 상징한다면, 여름은 불완전의 계절이다. 덥고, 습하고, 미스샷도 잦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진짜 골프의 묘미가 숨어 있다. 조건이 좋을 땐 누구나 잘 친다. 하지만 조건이 나쁠 때 자기 스윙을 유지하는 게 진짜 실력이다. 여름 골프는 그래서 좋다. 땀과 햇빛이 만들어내는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내 리듬을 찾는다.
라운드 후 차 안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피로, 팔에 남은 선탠 자국 그리고 가방 속 눅눅한 장갑.
그 모든 게 여름의 흔적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편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그걸 여름 골프의 문장이라 부른다. ‘가을은 빚내서라도 골프 한다’지만, 나는 여름에 쏟아붓는다. 열정, 체력, 그리고 나 자신.
왜냐면, 태양빛 아래서 땀을 흘릴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을엔 완벽을 꿈꾸지만, 여름엔 그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지나간 여름을 돌아보며 다음 여름을 기다린다. 나의 골프가 늘 여름 안에서 빛이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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