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닫혀 있었다. ‘그’는 오늘도 성의 안쪽 문 앞을 서성인다. 에워싸는 성벽은 ‘그’를 늘 지켜주지만,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늘 성벽 밖의 세계를 상상하곤 한다. 때문에 하나, 둘 성을 떠나는 자들이 열고 나가는 문 앞을 서성이며 바깥 세상을 엿보는 것이 ‘그’의 요즘 최대 관심사다. 오늘도 누군가 이 성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총 3명이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마음이 얼어붙어서, 하나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하나는 자신을 너무 미워해서 떠난다고 들었다.
기다리던 차에 말과 마차가 ‘그’의 앞을 지나갔고 성문이 열렸다. 그는 재빨리 문 쪽으로 다가가 성 밖 풍경을 엿보았다. 잠시 잠깐 보는 풍경이었지만 그곳은 시작과 끝, 질서 속에 무질서, 자유와 불안,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으로 느껴졌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저 직감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 직감은 떠나는 자들의 얼굴빛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직감에 이끌려 성 밖을 엿볼 때마다 ‘저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성 밖으로 나가는 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떠나는 이유를 하나씩 가지고 성문 밖을 나섰으나 어떤 이유를 가지고 다시 되돌아오는 법은 없었다. 그렇게 누군가 성 밖으로 나가는 일은 중단되지 않고 매일 계속됐다.
성 내부의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 자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갖는 자는 바로 ‘그’ 한 사람뿐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가 소유한 물건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가끔은 사람에게 눈길을 주기도 했는데 그건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상점에서 구했는지만 알아내면 다른 이 또한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거래는 대개 순조롭고, 거래 그 이후에는 자신이 새롭게 소유한 물건들을 또다시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때문에, 성문이 하루에 한 번씩 열리고 닫히는 것쯤은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아, 물건 속에서 봤던 그 사람 어디 갔지?’ 하고 떠오를 때면 그 사람은 ‘온기’를 찾기 위해 성 밖으로 떠난 뒤였다. ‘아, 그 사람 성 밖으로 나갔구나. 어디로 간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가진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의 의식은 다시 물건으로 옮겨갔고 정체 모를 어딘가를 배회하며 한 동안을 공중에서 떠돈다. 한참을 떠돌다 보니 성 밖으로 나간 사람에 대한 기억은 의식 속에서 증발된다. 각자의 시선은 다시 각자가 소유한 물건을 찾아간다.
그렇게 오늘도 ‘그’만이 외롭게 성문 앞에서 밖으로 나가는 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낯빛을 살피며 바깥으로 향하는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궁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