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2
투자를 받기 전에 우리는 고객들의 쉼터로 마련된 매장의 6인용 테이블을 우리의 사무실로 삼았다.
직원은 나까지 단 3명. 낮에는 여의도에 위치한 자산운용사에서 일했던 나는 퇴근 후에는 바로 강남역 부근의 매장으로 와서 사업적인 일들을 처리하곤 했다.
임대료를 내는 사무실을 구한 건 그로부터 2년 뒤 내가 회사를 퇴사한 이후였다. 커다란 책상을 무려 5개나 넣을 수 있는 10평 정도의 사무실에서 4명이 모여 일했다(최초로 채용도 이때 이뤄졌다!).
강남역 뱅뱅사거리쪽의 매우 작은 오피스건물이었던 터라, 주차문제나 화장실 문제로 꽤나 귀찮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돈 내고 사용한 최초의 사무실이었고 눈뜨면 출근하고 싶었던 시절이어서 재밌는 추억이 많았던 곳이다.
매장이 7개까지 늘어나면서부터는 20평 정도의 사무실로 다시 이사했다. 잦은 이사는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므로 매번 임대차계약은 1년 단위로만 계약했다. 그리고 직원은 이제 7명까지 늘어났고 각자 운영, 공사, 고객응대, 디자인, 마케팅 등 나름 한가지 전문분야를 담당했다.
이때까지는 사실 회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한 오히려 공동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주차장이 몇 백 미터 떨어져 있어서 아예 킥보드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주차장에서 사무실로 오곤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배고픈 청춘들은 샌드위치나 에그땡땡을 킥보드셔틀로 사다 먹었고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까지 세끼를 함께 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딱히 조직관리나 인사평가도 필요없었고 서로 늘 얼굴을 맞대고 얘기했으므로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훤히 알았다. 물론 중간에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도 있었고 3일만에 무단 퇴사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핵심멤버들은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그냥 새로운 일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이때 사무실은 1층이었는데 유리문 하나로 버티고 있어서 겨울에는 따로 개인난방기기가 필수였다. 한번은 디지털 도어락이 비를 맞아 먹통이 되서 저녁 먹고 1시간 동안 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또 옆사무실은 무슨 주식추천해주는 업장이었던 것 같은데 주가가 빠지는 날이라도 되면 이십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고객전화를 붙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사무실벽을 통해 들리기도 했다.
참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이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어쩌면 이후에 닥칠 폭풍과 자갈밭을 상상할 수 없었던 무지와 순수함 때문이었을까, 하루하루가 마냥 행복했었던 것 같다.
나와 공동창업자는 창업 이후 3년 정도는 월급을 따로 가져가지 않았었는데 꼬박꼬박 나오던 월급이 없었어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은 매일 화수분처럼 샘솟았고 그것들을 우리 제품에 바로 적용해볼 수 있었으며 결과 또한 두 눈으로, 아니 피부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생각이 제품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과정이었다(나중에 읽은 책에서는 이걸 PMF:Product Market Fit이라고 하더라).
직장에서는 보통 영업, 마케팅, 회계처럼 한가지 기능적인 영역밖에 담당할 수 없는데, 이게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사방이 유리벽으로 막힌 것처럼 답답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기만 해도 이건 너의 일이 아니라며 너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소리가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만든 회사에서는 내 생각대로 다 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이걸 적용해봐야지, 이런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봐야지 하는 생각들이 제일 먼저 머릿 속에서 번뜩였고 출근하는 내내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소리친다.
"이 아이디어 어때!?"
출근이 기다려지는 생활이라니. 아, 내 회사와는 뜨겁게 사랑에 빠질수도 있구나.
비록 월급은 없었지만 성공을 향한 달콤한 꿈과 희망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채웠다. 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때는 털끝만큼도 몰랐다, 이 후에 올 거대한 풍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