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3
2019년 9월 시리즈 A투자를 받고 이 돈으로 사업을 어떻게 키울까 행복한 상상을 참 많이도 했다.
우리가 하고 있던 사업은 시설자금이 필요한 사업이었으므로 우리는 이 돈을 프로토타입을 양산하는데 주로 썼다. 그 덕에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일찌감치 시장에서 리딩 포지션을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총무처럼 없던 포지션도 필요해지고 사람이 늘어날 것을 예상하니 다시 사무실을 이전해야했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좋은 인재가 많이 와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이런 바램들이 마음 속에서 간절히 메아리칠 때 묘하게도 내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들이 들렸다.
"사무실은 강남에 있어야 인재가 모인다. 멋진 인테리어는 기본.속닥속닥"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장비는 무조건 최고급으로 드립니다."
"간식은 늘 무제한이죠. 당보충은 필수니까요."
"열심히 일한 당신 쉬실 수 있게 안식휴가를 떠나세요."
음? 이런 복지는 예전에 일하던 돈 많이 벌던 금융회사에서도 없었던 복지인데? 와 요즘 회사들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사무실들이 다 이렇게 멋지다구?
마치 스타트업 신드롬 같았다. 모든 회사들이 앵무새처럼 좋아보이는 것들을 따라했고 마치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스타트업의 HR 직군들은 채용페이지에 한결같이 휴가와 간식얘기를 해댔다. 단언컨대 그 어떤 돈 잘 버는 대기업들보다도 좋은 복지들이었다.
문제는 나 조차 이러한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인재들을 모두 놓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뛰어난 사람이 오기에 우리 회사는 내세울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복지나 멋진 사무실과 같은 좋은 포장이 필요했고 결국 8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이전보다 임대료가 5배나 비싼 강남의 사무실로 과감히(?) 이사를 가게 된다.
그만한 임대료를 감당할 정도로 돈을 벌고 있었냐고? 절대 아니다. 이것은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투자였으니까 받은 투자금에서 응당 지출해야할 비용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투자자들도 '대표님 이제 투자도 받으셨으니 사무실도 좋은 곳으로 옮기셔야죠'라고 생각없는 말을 던졌다. 채용페이지에 간식 무제한과 휴가 등등 써넣었음은 물론이다. 다른 회사에 질 수 없었으니까.
투자금을 허비하는 풍조는 교묘히 직원들에 대한 투자로 묘사되며 좋은 사무실과 좋은 복지는 모든 스타트업들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다 투자금이 금방 바닥나면 어떻게 하냐고? 그 전에 두번째 투자를 성사시키면 될 일이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우리도 다들 쿠팡처럼 될 꿈나무들이었으니까.
투자금(캐시)을 태우면서 돈을 벌지 못해도 지표를 성장시키면서 자금이 고갈되면 다시 투자를 받아서 엑싯할 때까지 가는 성장전략. 지금은 캐시버닝 전략이라고 부른다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인지하진 못한채 경쟁적으로 서로를 모방하고 있었다. 그래야 잘 나가는 스타트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잘 나가는 회사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간식 무제한과 리프레쉬 휴가는 기본, 최고급 업무 장비와 유행하는 공유 소프트웨어는 다 가져다 썼다.
그리고 3년 후 우리를 포함해서 이런 트랙을 탔던 회사들은 모두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