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Chasing the Big Breaks #4
회사를 운영하며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렸던 순간이 세 번 정도 있었는데,
첫 번째 투자를 받을 때와
인원수가 20명이 넘었을 때
그리고 미국발 매크로 충격(금리인상)이 국내에 가해졌을 때이다.
이것은 인원수가 20명이 넘었을 때 나타난 사내 정치와, 그에 귀결된 권고사직에 대한 이야기다.
2019년 스타트업 허니문을 거치고 첫 번째 투자도 성사시키면서 회사는 점차 사세를 넓혀갔다.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긴 했지만 사전적 투자의 관점에서 현금을 태우면서 차고 스타일의 좁은 사무실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번듯한 사무실을 서울 강남에 얻기도 했다.
담당자가 알아서 처리하던 처리하던 인사, 회계 등의 조직도 좀 더 전문성을 갖추면서 조직도 정식으로 팀들이 존재하는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고객응대, 마케팅, 개발팀, 백오피스 등 사람 단위에서 조직 단위로 형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인원수가 20명을 넘어가면서부터였다.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전에는 없었던 뒷얘기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5명 남짓의 인원이 하루 세끼를 같이 먹던 시절에는 뒤에서 따로 끼리끼리 할 얘기 자체가 없었으나, 팀 단위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복잡도가 그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마케팅팀이었다. 마케팅을 담당했던 기존 멤버가 역량 문제로 이탈하면서 우리는 좀 더 뛰어난 사람을 데려오고자 했다. 당시 우리 회사 규모로서는 최초로 엄청나게 높은 연봉을 지불하고 온라인 보험 서비스의 마케팅 팀장으로 재직하던 사람을 스카우트했다. 그리고 세명의 팀원을 신규 채용하며 마케팅팀을 야심 차게 셋업 했다.
신임팀장은 경영진의 방향을 이해하고 이를 실무와 연결하는 데에 많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이 일하던 회사보다 더 작은 회사로 왔기 때문에 업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시키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잡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실무자들이 우르르 떼 지어 업무시간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많이 관찰되는 한편, 마케팅팀이 일하기 힘들어한다라는 말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려왔다. 팀장과 이야기해 보면 본인이 좀 더 신경 써서 실무진들을 챙겨보겠다고 하고, 실무자들과 1:1로 이야기해 보면 또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답변들을 했다.
하지만 돌아서서 다시 일을 보고 있으면 이내 원년 멤버들이 찾아와서 '누가 힘들어해요, 누가 나갈 것 같아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들을 하고 가곤 했다.
문제는 그 누구도 기승전결을 모두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면 모두 '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대요'이런 애매모호한 말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하는 수없이 대표인 나는 마치 조각퍼즐을 맞추듯 누가 누구 때문에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고 퇴사할 것 같다는 추리를 완성해야만 했다.
채용은 서류심사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회사의 업무 중에서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 중 하나다. 당연히 조직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직원들의 이탈로 이어지고 회사는 재채용의 기회비용까지 들여서 큰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의 제보(?)를 통해서 완성된 조각 퍼즐은 '마케팅 팀원들이 팀장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로 귀결됐다. 팀 내 갈등이면 서로 터놓고 소통을 해서 풀어야 하는데 의사 전달은 우회하여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내 귀로 전달이 됐다.
그리고 마치 그게 본인들의 뜻을 밝힌 것인 양 이후 팀원들은 한 명 한 명 퇴사의사를 밝히며 퇴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어떤 팀원은 퇴사상담 때 그동안 팀장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회사한테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여러 차례 알렸는데 회사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그 당시 팀장은 책임감이 있었고 의지도 있는 사람이었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느껴지는 점도 없었기에 세 명의 팀원들이 원흉으로 지정할 어떠한 이유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 나가고 팀장만 남았다.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신임 팀장도 어두운 얼굴로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뭔가 본인이 한 과오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팀장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팀원들이 모두 이탈한 상황에서 무의미했고 본인이 채용한 모든 팀원들이 퇴사하였으니 마케팅팀도 운영될 수 없었다. 그러니 팀장인 당신도 물러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본인도 이를 수긍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뚜렷한 근거도 없고 심적으로도 내키지 않는 권고사직을 한 셈이다.
나는 지금도 그 팀장이 업무 상 과오를 저질렀거나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 지금은 다른 더 좋은 곳에서 능력 발휘를 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틀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필요악적인 조치였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일로 인해 우리 회사의 마케팅팀은 팀 전체가 모두 증발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냉철하게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돌이켜보면 이때 조직 내에서 이뤄졌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매우 폐쇄적이고 우회적이었다. 이건 매우 좋지 않다.
당사자들은 서로 테이블 위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가 있음을 뒷루트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방식만 사용했다(이 부분은 적어도 팀장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리고 조정할 힘이 있는 경영진이 이를 듣고 알아서 조정해 주기를 기대했고 조정이 되지 않자 떠나는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다. 건강한 조직은 그 자리에서 직설적으로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때 우리 조직 내부에서는 최초의 집단적인 정치적 움직임이 있었지만 나는 감지하지 못한 셈이었다.
당시 나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이렇게 표출될 수도 있구나 생각하는 정도였지 누가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깜깜이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벌어질 사내 정치의 서막에 불과했다.